정부, 6.15ㆍ10.4선언 협의용의 시사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29일 북한이 거듭 강조하고 있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에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발언을 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 질의응답 과정에서 “과거 남북간 합의중에는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6.15선언, 10.4선언도 있는데 이행되지 못한 것도 많다”면서 “우리로서는 앞으로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상호 존중의 정신 아래 남북간 협의를 통해 실천가능한 이행방안을 검토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날 이 발언을 두차례 더 반복, 최근 남북관계 상황을 반영한 `준비된 레토릭’이자 북한을 향한 메시지임을 짐작케 했다.

그의 이날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의 3월26일 통일부 업무보고 발언과 비교할때 적지 않은 변화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부 업부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와 그 이후에 정상이 합의한 합의문이 있다”면서 “가장 중요한 기본 남북간 정신은 1991년 체결된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해 기본합의에 더 무게를 뒀다.

당시 대통령은 6.15,10.4선언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업무보고 내내 두 합의 이행과 관련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고 대신 남북기본합의를 새롭게 강조했던 것이다.

북한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제1,2차 남북정상회담의 산물인 6.15와 10.4 선언 이행을 강조하며 대남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3월26일 발언에 대한 나름의 해석에 기반하고 있다고 많은 이들을 보고 있다.

비록 김 장관은 6.15, 10.4 선언도 여러 남북간 합의 중의 일부이며 그것을 포함한 남북간 상당한 합의 내용들이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거론했지만 6.15, 10.4선언 역시 남북 당국간의 합의인 만큼 기본적으로 존중한다는 뜻을 이번 발언을 통해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김 장관은 6.15, 10.4 선언의 구체적인 이행 문제에 있어서는 비핵화 진전, 사업 타당성, 재정부담 능력, 국민 동의 등 `경협 4원칙’에 따라 조건부 이행하겠다는 현 정부의 기본 입장을 접지 않았다.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상호 존중의 정신 아래 남북간 협의를 통해 실천가능한 이행방안을 검토해 나가길 기대한다”는 김 장관의 발언은 현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 기조에 따라 합의 이행에 대한 재검토 또는 이행 속도조절, 사업 아이템의 변화 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장관 발언 중 `상호 존중의 정신’은 우리 정부도 6.15, 10.4 선언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고 북한도 우리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언급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아 보인다.

또 눈에 띄는 대목은 장관이 `남북간 협의’를 언급함으로써 6.15, 10.4 선언 이행 문제를 놓고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북한은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이 대통령의 상주 연락사무소 설치 제안을 거부할 때 “6.15, 10.4 선언에 대한 입장을 바로 가져야 할 것”이라며 볼을 남측 코트로 넘긴 상황이라 김 장관의 남북간 협의 언급은 6.15, 10.4선언 이행 문제에 대해 북한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는 곧 6.15, 10.4선언 이행 문제와 같은 포괄적 현안 협의를 명분으로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에 대한 북한의 의중을 떠 보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김 장관은 북한이 연락사무소 구상을 거부한 상황에서 남북대화를 언제 어떻게 재개할지와 관련, “남북대화는 북한의 반응을 봐가며 검토할 것”이라고 말해 전적으로 북한의 태도 등에 달려 있음을 시사했다.

즉 우리 측이 당장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거나, 연락사무소 구상을 정식 제안하기 보다는 북핵 진전 상황과 북한의 대남 태도 등을 한동안 지켜본 뒤 대화 재개를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또 김 장관은 현 정부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 구상이 북한이 핵을 완전 폐기할때 적용할 정책이 아니라 비핵화 프로세스의 진전 단계에 맞춰 가동할 정책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는 정부의 남북 경협 관련 입장에 언급, “북핵이 폐기되고 나서 하는게 아니라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단계적으로 한다는 것은 남북간 상황, 핵문제 상황, 남북경협 4대 원칙에 따라 대규모의 지원이나 경협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특히 “그것 말고도 인도적 지원, 인적교류 사업 등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북 식량 지원과 관련, “북한의 지원요청이 있을때 인도적 차원에서 검토할 용의가 있다”며 지원 요청이 있어야 지원에 나선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김 장관은 “유엔 총회에서 채택한 결의안에도 인도적 지원의 경우 수혜국이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북에서 아무런 얘기가 없는데, 앞으로 그런 요청이 있으면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무소속 이해봉 의원의 북한 인권 관련 질의에 “앞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인권대화 등 여러 기회에 북한 인권 상황이 개선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뒤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북한 인권문제는 챙길 것이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