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통일 원하면 대북방송 지원해 北변화 촉진해야”


동서독 분단 당시, 동독 주민들은 서독 TV 방송을 통해 자국 내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시위 소식을 접했다.
사진은 당시 동독 가정에서 보유했던 TV 기기. 독일 라이프치히 현대사포럼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사진=데일리NK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크게 기여한 서독 라디오 방송처럼 대북라디오 방송도 한반도 통일을 앞당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선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서독 정부가 대(對) 동독 라디오 방송 제작에 많은 지원을 한 것처럼 대북방송에도 국가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미디어 전문가들은 북한 주민들을 계층별, 나이별로 구분해 의식변화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맞춤형’ 콘텐츠 제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북라디오 방송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지원도 이같은 방안을 실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주민들이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중파 주파수를 배정하고 라디오와 같은 수신기를 북한에 유입시켜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더불어 전문가들은 북한에 정보를 유입시킬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특히 지난 8.25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그 효과가 재확인된 대북확성기나 전광판 또한 필요에 따라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고려해, 북한 주민들도 TV나 인터넷을 통해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피력했다.

◆ “南, 對北방송 콘텐츠 개발 지원하고 北에 라디오 보급해야”= 과거 동서독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신(新) 동방정책이 추진되면서 일정 정도 우편 및 인적 교류가 이뤄졌지만, 서독 정부는 이러한 교류만으로는 동독의 체제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서독은 동독 주민들이 접할 수 있었던 서독 방송을 분단 상태를 극복하는 ‘적극적인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당시 동독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서독의 리아스(RIAS)나 도이칠란드풍크(Deutschlandfunk), 도이체벨레(Deutschewelle) 등은 언론으로서의 자유를 보장 받으면서도, 서독 정부로부터의 지속적인 지원 아래 양질의 대 서독방송을 제작할 수 있었다. 세 방송사가 자국 주민들만을 위한 방송에서 그치지 않고 동독 주민들의 의식 변화와 민주화 시위를 일으키는 데 영향을 주는데 서독 정부의 역할이 컸다는 것.

전문가들에 의하면, 리아스는 설립 초기 미국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으나, 동서독 주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인기를 얻게 되자 서독 정부가 직접 지원에 나서게 됐다. 도이체벨레는 출범 초기부터 세금으로 운영됐으며, 도이칠란드풍크도 1990년대 들어 시청료를 받기 전까지는 정부 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전폭적인 서독 정부의 지원으로 다양하고 양질의 대 동독 방송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동서독과 비교해 인적 교류조차 허용되지 않는 한반도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자유로운 세계의 정보를 보여주려면 대북라디오 방송을 강화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면서 “경제나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남북 간 협력을 제고해야겠지만, 이와 동시에 대북라디오 등을 매개로 북한 주민들과의 통일을 준비해가는 데도 힘을 실어야 한다” 말했다.

로버트 레베게른(Robert Lebegern) 뫼들라로이트(Mödlareuth) 국경 박물관장(오른쪽 사진)은 “지금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 송출도 단파보다 더 멀리, 더 또렷이 전달되는 중파를 활용하거나 위성 기술을 도입하는 방법을 강구해보라”면서 “북한에서 검열이 워낙 심해 쉽지 않겠지만, 인터넷이나 라디오 및 TV와 같은 수신 기계들을 반(反)체제 인사들에게 전해주는 일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안나 카민스키(Anna Kaminsky) SED 독재청산재단 사무총장(왼쪽 사진)은 “독일에서는 확성기나 전광판 같은 수단보다는 라디오의 효과를 더욱 중요하게 평가했던 것으로 안다”면서도 “하지만 독일과 한반도의 상황은 다르지 않나. 북한으로의 정보 유입에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제약돼 있음을 고려하면, 대북확성기나 전광판도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 “쉽지 않지만 남북 언론교류 확대 노력해야”= 전문가들은 대북방송 외에도 인적 교류가 활발했던 독일의 사례를 들며 남북 간의 교류가 대북방송과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남북 간 ‘언론 교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북한 내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외부 정보를 보다 쉽게 유입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교류’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에서다.

테오 좀머(Theo Sommer) 디 자이트(Die Zeit)지 대기자(오른쪽 사진)는 “1964년 동독의 ‘신 독일(Das neue Deutschland)’라는 관영지의 제안으로 동서독이 사설(社說)교환을 추진했으나, 이는 동독 측의 요구로 3,4주 만에 중단됐다”면서 “서독은 동독의 선전에 흔들리지 않았으나, 동독으로 유입된 서독의 정보들이 큰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좀머 기자는 “교류가 없는 지금도 외부 정보는 계속 북한으로 유입되고 있다. 그러니 공식적인 교류가 시작되면 정보 유입량이 더 크게 늘어나지 않겠는가”라면서 “대북라디오 방송에 대한 북한의 위협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원칙을 지키며 언론 교류를 병행한다면 더욱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민스키 사무총장도 “서독에서는 동독의 미디어를 접해도 처벌을 받지 않았고, 이는 서독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동독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일조했다”면서 “한국의 체제가 북한보다 우월하다는 게 입증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북한 미디어를 접하거나 정보를 입수하는 건 매우 제한돼 있다는 게 의아스럽다. 한국도 북한의 정보에 더욱 개방적이어야 북한으로의 정보 유입도 더욱 용이해지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롤란트 얀(Roland Jahn) 現 슈타지 문서보관소장(왼쪽 사진)은 “아직까지 북한에서 외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주민은 소수이고, 대북방송만으로 전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한정돼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북한 방문이 허용된 유럽 인사 등을 활용해 민간 방북과 같은 인적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외부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북한 주민들은 무언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대북라디오 방송을 비롯해 북한의 정보 자유화를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금은 비록 북한 주민들이 외부 정보를 접할 확률이 높지 않더라도 외부로부터의 정보는 일부 청취자의 귀에서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의식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란 점에서다.

1990년대 말 민간 차원에서 방북한 경험이 있는 좀머 대기자는 “북한 근로자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북한의 토론 문화가 아예 획일화 돼 있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걸 깨달았다”면서 “북한이 과거 동독보다 훨씬 엄혹한 곳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북한 주민들 중에는 분명 깨어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내심을 갖고 대북라디오 방송을 지속하라”고 조언했다.

동독에서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했던 지그베르트 셰프케(Siegbert Schefke) 現 중부독일방송(MDR) 기자(오른쪽 사진)도 “독재 정권 아래에서도 분명 이성적인 사람은 존재한다”면서 “대북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가 돼 주고 힘을 실어준다면, 북한 민주화나 독재의 붕괴와 같은 극적인 결과도 반드시 도출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