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 원칙은 서있나?

북한의 대대적인 유화 공세로 남북관계가 외형적으로 진전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 26~28일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북한이 적십자회담에서 남한에 쌀이 남아도는 문제를 거론하며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을 우회적으로 희망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북측 대표단이 최근 농업계를 중심으로 국내 쌀값 유지와 재고 감소를 위해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을 법제화 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한국 내 동향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남측 농민들은 쌀값이 떨어져 고민이고 정부도 보관료가 많이 들어 걱정이라고 들었다”고 말하며, 쌀 문제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실제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고 쌀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는 만큼 조속히 대북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적십자 회담에서 인도적 식량 지원과 관련된 구체적인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최근 유화적 태도로 돌아선 원인에는 식량 부족도 포함돼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만큼 북측이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 27일 국회 외교통일통상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북한이 식량난에 봉착해 있고, 보유한 현금도 감소하는 등 경제상황이 어려운 점 등을 대남 유화 공세의 배경으로 꼽았다.

우리 정부도 대화 국면을 이어갈 수 있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도적 지원 재개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장관은 이 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하며, 정부의 지원이 조만간 재개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순수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추진한다는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우리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북한의 요청이 있다면 언제라도 인도적 지원 재개가 가능하지만, 그에 앞서 이와 관련한 당국간 협의가 전제가 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이 쉽지 않은 과제다. 아무런 조건 없이 쌀을 보내줬던 지난 정권에 익숙해져 있는 북한이 분배 투명성 문제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적 지원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를 해칠 수도 있다는 지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나오는 직접 지원의 대안은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과 상호주의 거래다. 국제기구는 한국의 대북지원에 비해 강화된 모니터링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납북자 송환과 연계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한국에서는 우선 인도적 지원에 대한 개념 자체가 잘못 돼 있다”며 “인도적 지원이라고 한다면 수혜자에게 도달되는 것까지 확인이 돼야 하는데, 지난 정부에서는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서 국내 여론에 분열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정부를 보면 인도적 지원이 비록 정치적 거래에 따라 이뤄지더라도 명목상으로는 이를 분리시켜 철저한 모니터링을 실시한다”며 “한국 정부도 인도적 지원을 할 거라면 모니터링을 철저히 해야 하고, 상호주의적 정치거래 차원에서 북한에 직접 지원을 한다면 납북자 송환 등 반대 급부를 요구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현상적인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인도적 대북지원을 북한의 구미에 맞출 경우 원칙을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가 ‘퍼주기’ 논란을 일으켰던 지난 정권과 차별성을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민들의 여론은 무조건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은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조건없는 지원을 찬성하는 답변은 11.1%에 그친 반면, 분배투명성 확보 후 지원해야 한다(38.4%)나 핵문제 진전과 연계해야 한다(34.3%)는 의견은 압도적으로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