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계 최고 정보-외교력’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1989년 경이었던가. 폴 케네디(예일대)의 ‘강대국의 흥망’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지도 벌써 20년이 된 것 같다.

지나온 대략 500년간의 스페인,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의 흥망성쇠 문제를 다룬 이 책은 국가전략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략을 다룬 서적이라면 ‘손자병법’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대표적인데, ‘재미있는’ 전략서적으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능가하는 책이 아직 없는 것 같다. 만약 노벨 문학상을 소급해서 줄 수 있다면 첫째 후보가 나관중이 아닐까 싶다.

서양문학의 아버지격인 호머가 좀 섭섭해할지 모르겠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이 ‘삼국지’일 것이다. 수많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분명한 캐릭터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삼국지’의 재미는 역시 등장인물들이 구사하는 흥미진진한 전략과 전술이다. ‘삼국지’를 들고 밤을 새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강대국의 흥망’은 물론 ‘삼국지’ 같은 책이 아니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하지만 대략 지난 500년 동안 강대국들이 특히,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 어떻게 국가의 힘(가용 원천)을 사용하면서, 흥하고 망했는가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한 국가가 어떤 역사적 시기에, 어떤 내외적 환경에서, 국가의 힘을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기본적인 국가전략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폴 케네디의 관점에서 군사분야와 경제분야를 비교해보면, 사람이 굶어죽는데도 핵개발을 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를 시끄럽게 만드는 김정일의 북한은 정말 ‘미친 정권’이다.

경희대 석좌교수이기도 한 폴 케네디가 최근 내한하여, ‘중앙선데이’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 눈길을 끈다.

그는 “현재 한국이 직면한 도전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 도전은 북에 있는 ‘미친 정권(crazy regime)’이며,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한국만이 안고 있는 문제”라고 했다.

두 번째 도전은 “미 일 중 러 4대 강국이 중견국인 한국을 포위하고 있다는 점인데, 한국이 이룩한 성공은 이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더욱 경이롭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이 ‘미친 정권’북한과 싸우면서,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조건에서 성공한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 경이롭다는 말이다.

한국이 처한 여러가지 객관적인 지리정치적 환경 및 보유한 국가 원천을 고려하면 한국의 성공은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미 하버드대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이고, 중국의 덩샤오핑도 박정희의 경제전략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한국에 대한 폴 케네디의 진단은 이어진다.

“그래서 한국 국민은 자부심을 가져야 된다. 이 두 가지 도전 때문에 한국은 특히 외교를 중시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외교력을 확보해야 한다. 모든 주변 강국과 대화해야 한다. 한·중 관계도 중요하다는 것을 미국에 설득해야 한다. … 한국은 강점과 약점을 포함해 여러 가지 특성이 혼합적으로 나타나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지정학적 공간에서 부상하려는 한국은 스스로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다.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너무나도 독특한 나라다. 억지로 다른 나라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

지금 한국의 대전략은 북한의 저 ‘미친 정권’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 4강 속에서 한반도가 동북아 및 세계에서 어떤 지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분명히 그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폴 케네디의 말은 큰 설득력을 갖는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대전략은 경제분야, 군사분야를 따로따로 진단해서 세울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두 가지 도전을 고려하면서 매우 창의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한반도 문제, 동북아의 평화 번영 문제, 그리고 세계 민주주의 공동체 형성의 문제에서 한반도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지식인들은 앞으로 할 일이 매우 많다. 또 그 주제(어젠다)들은 대체로 크고 무겁다.

폴 케네디의 진단처럼 앞으로 한국이 제대로 생존하려면 4강 외교에서 ‘세계 최고의 외교력’을 가져야 한다. 세계 최고의 외교력을 갖게 만드는 인프라는 ‘정보력’이다. 정보가 외교력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먼저 가져야 하는 것이다.

현재 정보기관의 양과 질의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세계 최고는 이스라엘의 ‘모사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세계 4강 속에 둘러싸여 있지 않다. 따라서 한국은 모사드보다 더 나은 정보기관을 만들어야 4강 속에서 창의적인 외교를 펼칠 수 있다.

인구, 자원 등의 측면에서 한국이 경제와 군사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정보와 외교는 ‘최고’를 따지기 전에 향후 한국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선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청와대,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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