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상봉역’에서 내려 ‘송환’ 열차로 갈아타라

28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납북자 김영남(45)씨와 어머니 최계월(82)씨가 만났다.

1978년 김씨가 전북 군산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17세의 나이로 납치된 지 28년만이었다. 납치 당시의 두려움과 공포는 흐르는 세월에 녹아 희미해졌겠지만, 핏줄에 대한 그리움은 늘어가는 나이와 함께 무겁게 쌓여 왔을 것이다.

‘엄마, 나 맞아’

어머니를 본 순간 김씨가 내뱉은 말은 ‘엄마’였다. 어머니 최씨의 입에서도 아들이 납치된 이후 수십년간 쌓여온 슬픔과 그리움의 고통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아유, 우리 아들…. 아유, 우리 아들…”

최씨는 한순간에 고통을 쏟아 놓느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저 아들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상봉 장면을 지켜보던 온 국민의 가슴에도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모자(母子)의 만남을 기뻐하는 눈물이었고, 어린 소년을 강제 유괴해 한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분노의 눈물이었다.

김정일 정권 공개사과, 송환이 실용적 해결이다

눈물을 거두며 우리 정부와 김정일 정권에 확인해둘 것이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납치자 문제는 이것으로 마무리 될 수 없다. 납치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김정일 정권의 공개 사죄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그리고 납북자 송환이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한다. 정부와 김정일 정권은 상봉이 끝난 후 곧바로 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회담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더 이상 점진적이고 실용적인 해법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그 동안 ‘근본적인 해법’을 추구해온 일본을 비판해왔다. 근본적 해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2000년 11월에 열린 제2차 상봉행사에서부터 납북자 가족 상봉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납북자 문제를 다루어 왔다. 현재까지 총 26가족 104명의 상봉이 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정부가 내세운 실용적인 해법은 언제나 ‘상봉’에서 멈췄다. 납치범죄자의 사과, 피해자 배상, 납북자 송환이라는 근본적 해결에는 단 한치도 접근하지 못했다. 점진적 해법을 추구한 지 이미 6년이 흘렀고, 그 사이 납북자 가족들은 최씨(82)처럼 늙어가거나,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이른바 점진적 해법, 실용적 해법은 이렇듯 초라하고 나약했다.

결론을 말한다면, 정부는 열차를 잘못 탔다. 그들이 올라탄 ‘실용적인 해법’이라는 열차의 행선지는 ‘상봉(相逢)’역을 시작으로 ‘상봉’역과 ‘상봉’역을 거쳐 결국 ‘상봉’역에 도착하는 코스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역을 시작으로 ‘김정일 정권 공개 사과’역과 ‘피해자 배상’역을 거쳐 결국 ‘납북자 송환’역에 도착하는 ‘근본적인 해법’의 열차에 올라야 한다.

정부가 열차를 잘못 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행선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만약, 행선지 오류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선뜻 내리지 못하고 있다해도 걱정할 일은 아니다. 납북자 가족과 국민을 믿으면 된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오류를 인정하고 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나선다고 해서 비난할 납북자 가족과 국민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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