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불능화後’ 본격 대북행보 시사

통일부가 23일 국정감사에서 최근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북한의 불능화 재개 등에 대한 정부의 상황 인식과 그에 따른 남북관계 발전 구상을 밝혔다.

정리하자면 불능화가 완료된 때부터 비핵.개방 3000에 따른 본격적 대북 이니셔티브를 취하되 그 전 까지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현재의 협력 수준을 유지하는데 무게를 두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이날 “앞으로 핵시설 불능화 조치가 완료되고 북핵 상황이 더욱 진전되면 정부는 남북간 경제협력을 확대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또 “불능화가 예정대로 완료돼 간다면 그 과정에서 남북간 사업을 적극 검토.추진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장관의 이런 발언은 정부가 경협 확대 등에 적극 나설 수 있는 북핵 진전의 수준을 불능화 완료로 잡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역시 22일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비핵화가 어느 정도 진행돼야 비핵.개방 3000이 집행되나’는 질문에 “외교부는 핵폐기 3단계 들어가는 단계가 비핵.개방 3000을 준비하는 단계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해 2단계인 핵신고.불능화 이후 3000구상이 본격화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런 입장은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비핵.개방 3000의 이행 계획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정부는 당시 북한이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이것이 검증을 통해 확인되면 즉시 비핵.개방 3000구상 가동 준비에 돌입,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 등을 설치해 이 구상의 구체화를 위한 사전협의를 본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남북경협의 활성화, 투자.무역의 편리화, 남북교역의 자유화 및 경제협력협정 체결 등을 통해 남북경협을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도록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 2단계 마무리에 복귀한 현 시점에서의 남북관계 정상화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또한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보류되어온 대북 식량지원과 통신 관련 자재.장비 공급, 개성공단 인프라 강화 등 현안에 대해서도 새로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는 북.미간의 핵검증 방안 합의와 그에 이은 북한의 불능화 재개 등을 남북관계 발전에 적극 나설 계기로 삼을 만한 진전으로 보기 어렵다는 정부의 인식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북한이 지난달 불능화를 중단하고 복구에 들어갔다가 최근 다시 불능화를 재개한 것인데다, 북미간 검증합의가 6자회담의 추인을 받는 과정을 남겨 두고 있어 현재의 북핵 상황을 실질적인 진전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이후 남북관계 중단 가능성을 언급하며 대남 압박을 강화하고 이명박 대통령 등에 대한 비난의 빈도를 높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대북 행보를 취하기 어렵다는 정부의 인식도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다음 달 4일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북핵 및 북미 관계 정상화 프로세스에 미칠 영향이 큰 만큼 시간을 두고 상황을 관망하겠다는 정부의 속내도 읽힌다.

다만 김 장관은 이날 북핵 진전시 경협 확대를 적극 추진할 것임을 밝히면서 “비핵.개방 3000 계획에 이미 포함돼 있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되, 10.4선언에도 포함돼 있는 사업들을 우선 고려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이 10.4선언에 대한 남측의 이행 약속을 대화의 전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 발언은 기싸움 내지 명분 싸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10.4선언 이행 문제를 실질의 영역으로 옮겨 놓으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읽힌다.

10.4선언에 담긴 개성공단 활성화 방안과 철도.도로 개보수 같은 북한 내 인프라 구축 등은 비핵.개방 3000의 추진과정에서 필수적인 사업인 만큼 우선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말이 아닌 행동으로 10.4선언 문제를 풀어 가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물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정부의 고심이 담긴 발언이라는 점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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