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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남북대화 성사 여부나 국내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북한인권 정책은 보편적 원칙과 헌법 정신 하에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복원에 대북정책 방점을 찍고 연일 북한에 대화 호응을 촉구하는 가운데, 자칫 북한 정권이 민감하게 반응해온 북한인권 문제는 소홀히 다룰 수 있다는 우려다.
이기완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25일 “자국의 정치적 목적 내지 정치적 상황을 지나치게 고려하기보다는 북한인권 상황을 기준점으로 삼아 북한인권 정책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면서 “일관되고 보편적인 원칙 하에 북한인권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이날 한국자유총연맹과 한국세계지역학회가 공동 주최한 ‘북한인권 문제의 이해와 개선책’ 제하의 학술회의에 참석, “한국은 국제사회에 북한인권 문제가 대두하던 초기에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북 인권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양상을 보였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미국은 핵무기·미사일 발사 시험 자체가 북한 주민의 ‘인권 유린’에 해당한다는 통합적 접근을 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 진보정권은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인권문제에 미온적으로 접근하고, 보수정권은 남북관계와 인권문제를 분리해 접근하는 특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문재인 정부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한인권 개선을 거론하고 있긴 하지만, 각각 평화체제 구축과 인도적 문제 해결과 병행 추진하는 것으로 돼 있다”면서 “얼마나 안보와 인권에 비중을 두고 북한·통일 문제에 접근할지 미지수”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제 교수는 “지나치게 북한을 의식하는 대북 저자세나 교류협력에 북한인권 문제를 종속시키는 태도는 옳지 않다”면서 “북한인권 정책의 추진 근거와 기본 방향을 ‘인류보편의 가치’와 대한민국 기본법인 ‘헌법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북한인권 문제는 ‘가치와 원칙’의 문제로 당당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북한인권의 본질적 문제가 북한 체제 속성에서 기인한다면서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선 북한 체제 변화 유도가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 대화를 통한 북한 문제 해결이란 기조 속에서 제기하는 ‘북한 체제 보장’ ‘북한 정권 인정’ ‘비핵화 유도를 위한 경제 지원’ 등의 주장과는 상반된 제언이다.
이 교수는 “북한인권 상황은 김정은 등장 이후 오히려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체제 생존과 정권 유지를 중시하는 ‘우리식 인권관’이 깊이 내재돼 있는 것”이라면서 “즉 북한인권 문제의 기원은 본질적으로 북한 체제 속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북한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것만이 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일국 한국자유총연맹 대변인은 “북한인권 침해의 구조적 원인은 1인 신격체제와 통제 경제, 광범위한 부패”라면서 “그 궁극적인 해결 방안은 북한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 대변인은 “만약 인권 침해를 양산하는 북한 특유의 구조적 요인에 대한 적절한 고려 없이 경제 원조를 계속한다면 북한의 잘못된 분배 구조가 개입돼 북한 지도부의 사치와 우상화, 체제 유지를 위한 군비 증강에 전용될 소지가 크다”면서 “이는 장기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과 자유 통일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북한인권 정책을 추진할 때 자유권과 사회권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과거 대북 정보유입을 통한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 등을 촉구하는 ‘자유권’ 중심 논의와 인도적 지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권’ 중심 논의가 양분돼 이뤄져 왔다면, 이제는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란 전체적인 맥락에서 북한인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원웅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서 북한인권법을 기반으로 하되 자유권과 사회권, 특히 북한 주민의 경제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통합적 인권정책 프레임이 설정돼야 한다”면서 “식량권 및 건강권 개선도 장기적인 인권 개선 로드맵 속에서 자유권 보호와 병행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인도적 지원과 관련,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한 정치협상용 ‘퍼주기’나 원칙없는 ‘자원배달’을 탈피하고 지원대상을 명확히 규정해 접근성과 분배 투명성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올인(All-in) 전략이 아니라 맞춤형 전략으로 현지 북한 농민이나 의료진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최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 교수도 “북한인권 증진을 위해서는 인권 가해자 책임 규명 등과 같은 채찍 외에도 당근을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북한 내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반대급부 없이 실시하는 게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부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한 종합적인 마스터 플랜을 마련, 질서 있게 추진해야 한다. 영유아나 임산부,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인도적 지원에 주력하되, 여건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라면서 “과거처럼 연례행사와 같이 이뤄지는 대규모 일방적 지원은 남남갈등을 재현할 공산이 크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