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정책 ‘北 장마당 활성화 전략’에 초점 맞춰라

I.

햇볕정책은 실패하였다.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경험적으로 실패가 확증된 정책이다. 구조적으로는 이 정책을 고안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북한이 옷을 벗지 않을수록 햇볕을 더 쬐어줄 수밖에 없었고, 현실적으로는 2007년 10월 김정일이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개혁개방은 없다!”고 확인해 줌으로써 사망한 정책이다.

햇볕정책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어 “굶주린 김정일 정권을 관리하는 정책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을 주어 달래보자”라는 것이지만, 지난 10년 실제로 굶주린 것은 북한주민이고 한국의 지원으로 살이 찐 김정일 정권은 그 사이 핵으로 무장한 늑대가 되었다. 따라서 북한정권의 관리방법으로도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하였다. 솔직히 그동안 햇볕정책을 통해 누가 누구를 관리하였는가? 놀라운 점은 “비핵개방 3000”을 새로운 대북정책의 근간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에서 다시 ‘햇볕전술’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동아일보에 의하면 “통일부가 지난해 12월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해 업무보고에서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최우선 과제로 보고했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질타를 받았다.… (통일부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대화 재개를 목표로 했다가 대화 재개가 안 되면 (북한에) 주고 또 주고 하는 패턴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며칠 전 발표된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의 내용이 너무 빈약해 북한전문가들을 놀라게 하였지만, 남측 통일부의 신년계획도 놀라울 만큼 진부한 내용이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비판처럼, “대화에 끌어내기 위해 주고, 끌어낸 후에는 대화의 주제에 합의하기 위해 주고, 합의한 후에는 대화의 주제를 떠나지 않기 위해 주고, 그러나 대화를 중단하면 다시 끌어내기 위해 인센티브를 준다”는, 우리식 표현으로 “퍼주기”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지난 10년간의 뺑뺑이 돌기 햇볕정책 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 중국의 학자가 햇볕정책이 지속불가능하다고 단정지었다는 점은 지난 10년간의 친북좌파정권의 대북정책이 얼마나 객관성을 상실하였는지 웅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뺑뺑이를 계속 돌다보면 국민들은 시작이 어디인지 금방 잊어버리고 눈 가린 노새가 방아 돌리듯 “퍼주기를 통해 그래도 무엇인가 진전되고 있구나!”라고 착각한다는 점을 남북정권의 ‘통일 일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뺑뺑이 돌기 햇볕정책에 맞춤한 새로운 직장들이 지난 10년동안 남북의 접경에 여럿 생겼을 것이다. 햇볕정책이 가져온 “통일일꾼들의 양지”가 왜 없었겠는가?

II.

김정일 정권 역시 창의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내내 6.15와 10.4 선언을 빚쟁이 빚 독촉하듯 외치더니 새해 공동사설에서도 계속 읊조리고 있다. 하기야 전임 사장 스스로 “내가 써 준 어음이니 결재하라!”고 윽박지르니, 김정일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어음지불을 하지 않는 후임 사장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역도”처럼 보이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긁어댄 어음의 엄청난 액수 때문만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지난 10년간 북한에 지원한 돈과 물자가 북한 경제의 재건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일방적으로 퍼주어 온 햇볕정책의 결과란, 나태하고 창의력 없고 배부른, 그러나 입으로만 “통일”과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는 부류와 계급을 남북에 양산했다는 점이다. 햇볕정책의 비생산성이, 지난 10년의 관행이 끊기자 바로 작년 말과 올해 초 아직 그 관성을 잃지 않은 채 남북 ‘통일일꾼들’의 지적(知的) 빈곤함과 ‘양지의 추억’으로 다시 드러났을 뿐이다.

독일의 통일방식을 비판해온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독일통일의 진정한 문제점은 “흡수통일에서 비롯된 막대한 통일비용이 아니라, 거꾸로 많은 비용을 통일에 썼기 때문이라는 점”을 완전히 간과했다. 독일통일의 교훈은 아주 상식적인 것이다. “마구 준 돈이 자식을 망치듯 일방적인 원조는 한 국가, 한 지역을 거지로 남게 만든다”는 점이다. 바로 김정일의 북한이 이런 망조(亡兆)에 걸린 것이다.

물론 김정일 정권은 한국의 막대한 원조로 사회주의 경제를 재건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핵보유와 미국의 테러지원국가 리스트로부터의 해제는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로서, 바로 이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조공 바치기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이 점은 지난해 여름 조총련에 보낸 문건에 잘 나와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 재건을 통해 현재 북한경제의 70% 이상을 담당한다는 장마당을 억압하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벌어먹는 장마당으로 인해 수령체제가 필요하기는커녕 각종 세금부과로 방해만 된다는 사실을 형식적인 생활총화보다 더 확실히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획경제든 장마당이든 봉건경제이든 개혁개방이든 모든 종류의 경제체제에서, 300만 아사와 툭하면 튀어나오는 유일한 대민정책 “고난의 행군(=자력갱생)”을 통해 그 무능력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김정일 정권에게 ‘스탈린식 계획경제로의 복귀’를 위해 막대한 원조와 융자를 할 수 있는 국가가 있을까? 정상적인 국가라면 없다. 있다면 그 국가는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이 주장하는 바의 하나는 하루 빨리 한국이 이 비정상 국가의 반열에 끼어달라는 이야기다.

경제학자들은 북한경제 재건의 핵심은 아주 간단하다고 말한다. 북한이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구입하기 위한 외화를 스스로 벌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의 내외조건으로 보아 개혁개방만이 북한주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이지만, 이러한 방향은 수령체제와는 양립 불가능하다.

거꾸로 북한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자력갱생” “주체” “우리식 사회주의”를 계속 외쳤지만 1948년 이후 단 한 번도 자립한 적이 없었다. 그 대신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가 끊어지자 필요한 외화의 상당부분을 마약, 가짜 담배, 한국으로부터의 ‘뇌물’ 그리고 외화 자체의 위조로 충당한다는, 실로 상상을 절하는 무뢰집단의 상상력을 발휘하였을 뿐이다.

여기서 북한경제의 정상적인 개선을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김정일 수령체제에 있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다른 한편 수령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대규모 원조를 할 수 있는 나라는 유일하게 한국이지만, 이 경우 한국은 모든 국가이성을 상실하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무현-김정일의 10.4선언의 부도덕성은 세 가지다. 첫째, 일방적 퍼주기라는 점에서 성공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 둘째, 수령체제의 유지를 위해 이용된다는 점, 셋째, 그 돈으로 북한주민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데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III.

그렇다면 수령체제의 해체를 함축하는 ‘비핵개방 3000’이 단기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원상회복 요구에 부딪혀 실행이 어렵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 것인가?

우선 확인할 점은 ‘비핵개방 3000’은 본질적으로 단기적인 대북정책이 아니라 차라리 중장기적인 대북정책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수많은 북한전문가들이 “만일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개방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처음부터 던진 이유다. 바보가 아니라면 김정일 정권이 단기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할 것이라고 믿는 자는 없다. 따라서 만약 통일부가 대통령의 질책으로 이제 새로이 중장기 대북정책을 세운다는 것은 넌센스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광폭(廣幅)함을 좋아하는 김정일이 10.4 선언의 화끈한 이행을 요구하고 있을 때, 그러나 한국정부가 절대로 그냥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무엇을 하느냐는 것이다. 만일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인센티브를 준다는 식”의 백해무익한 정책이라면 당연히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천번만번 옳다. 지금 김정일 정권이 노리는 바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원칙이 바늘구멍만큼이라도 훼손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제 더 이상 휴전선을 넘어서 평양을 쳐다보는 방향의 대북정책에는 돌파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차라리 우리는 북한과 중국 간의 국경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려 중단기적이고 실용적인 대북정책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핵심은 북한의 장마당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이 결코 북한정권에 적대적 국가의 행위가 아님은 중국의 역할을 보면 분명하다. 중국 혹은 화상(華商) 없이 북한의 장마당을 상상할 수 있는가? 만일 없다면, 한국 혹은 한상(韓商)들 없이 북한의 장마당을 상상할 수 없는 경우란 불가능한가? 물론 한국은 중국보다 많은 점에서 북한의 장마당을 활성화시키는 데 불리한 점이 있지만, 또 많은 점에서 중국보다 우월한 점도 있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장마당과 관계를 맺는 것이 반드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장마당은 북한주민들의 물리적 생존의 터이자, 또 필요의 충족을 통해 지금까지 억압되어 왔던 주민들의 욕망이 확인되는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지배집단과 장마당이 갖는 이중적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지배집단이 나누어 갖고 있는 크고 작은 권력은 김정일 체제의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이 권력을 통한 뇌물수수를 통해 -북한의 상황에서는 일종의 위험감수 서비스 행위라고도 볼 수 있는- 수령체제가 억압하려는 장마당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지배집단의 이중적 관계는 반드시 이중적 사고를 갖고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장마당이, 북한 주민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면 그만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능하게 만들고 또 그러한 확신에 보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독일의 통일에서 찾기 어려웠다는 사실에서, 장마당의 중요성은 남북한 주민 모두 자존을 지킬 수 있는 통일을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