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제무대서 `금강산사건’ 제기

정부가 북한 초병에 의한 50대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망사건을 국제무대에 본격 제기했다.

북측이 우리 측의 조사단 방북 요구에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제공조를 통한 여론몰이로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2일 오후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서 한반도 정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금강산 피살사건에 대한 현황과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유 장관은 이 자리에서 금강산 피살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우리측 조사단의 방북접수를 북측에 촉구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남북대화를 통해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이용준 외교부 차관보가 전했다.

일부 국가들도 “남북 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을 희망한다”며 우리 측 입장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북한에 영향력이 큰 중국 양제츠 외교부장은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세안 의장국인 싱가포르는 이번 협의 결과를 담은 성명을 발표할 예정인데 금강산피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참가국 간 온도차가 있어 포함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유 장관은 회의 참석에 앞서 고촉동 선임장관과 리셴룽 총리, 나단 대통령 등 싱가포르 고위인사를 연쇄 예방한 자리에서도 금강산 피살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한.미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에서도 금강산 피살사건에 상당시간이 할애됐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미 국무부에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고위 관리로 금강산 피살사건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회동에서 금강산 피살사건의 경위와 배경, 우리 정부의 입장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자 힐 차관보는 “50세가 넘은 중년 여성 관광객을 사살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북한이 이 문제의 조사에 협조해 조속한 시일내에 대화에 응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동아태 차관보인 힐 차관보의 반응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유 장관은 23일 한.미 외교장관회담, 한.중 외교장관회담 등 양자회동 기회는 물론 24일 북한 박의춘 외무상도 참여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금강산 피살사건을 제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3일 예정된 6자 비공식 외교장관회동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박의춘 외무상은 그러나 우리 측의 양자회동 제안에 응하지 않아 남북 양자차원에서 금강산 피살사건이 논의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전통문 접수도 거부하고 있는데 회담 수락은 상상하기 어렵다”면서 “남북 양자회동을 하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박 외무상은 이날 숙소인 샹그릴라호텔을 드나들며 금강산 피살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일본 정부가 중학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으면서 촉발된 최근의 ‘독도사태’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 말을 아끼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에 대해 “제기할 의제도 아니거니와 국제회의에서 독도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독도문제의 분쟁지역화에 반대한다는 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된다”면서 “국제 외교무대에서 독도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일본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독도문제의 부각은 6자회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힐 차관보는 한.미 수석대표회동에서 김 숙 본부장으로부터 독도문제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6자회담 프로세스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우려했으며 우리 측도 원칙적으로는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번에 일본 측과 장관급은 물론 6자 수석대표회의도 갖지 않는 등 ‘배신감’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세안+3 회의에서도 유 장관은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무상과 바로 옆 자리에 앉았지만 대화는 물론 인사나 악수도 나누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6자회담 진전에 아주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는 국민 정서나 우리 정부의 입장 등이 꽤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3국 공조가 예전같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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