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美 50만톤 대북식량지원에 흔들릴 필요없다

미국이 곧 북한에 식량 50만t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의 마이클 베이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국장 일행은 5일부터 8일까지 북한을 방문, 식량 지원 모니터링 방법 등을 북한 당국과 협의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8일 “미국 식량협상 대표단이 5일부터 8일까지 조선(북한)을 방문했다”며 “방문 기간에 인도주의적 식량 제공 문제에 관한 협상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북한 매체가 미국 식량지원 협상 대표단의 방북 사실을 보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시 행정부는 임기 종료 전에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일정 수준 외교 성과를 내야 할 처지이다. 때문에 북한의 핵신고서를 받고 내용이 검증가능하고 만족할 만하다면 일단 ‘핵시설 불능화와 완전한 신고’라는 북핵폐기 2단계는 마무리된 것으로 보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시 행정부 종료 이전에 6자회담이 최소 한번은 더 열려야 하는데, 그 시기가 8월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는 의장국 중국의 사정을 감안하면 6월 경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은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도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핵신고 및 6자회담 개최의 대가라는 상호주의적 성격도 없지 않다.

미국은 식량지원 투명성을 확보하는 모니터링 문제만 합의되면 식량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를 계속 공격하면서 미국의 식량지원을 받으려 할 것이다. 김정일은 그렇게 해서 이명박 정부를 물 먹이다 보면 남한 내부에서 ‘북한의 통미봉남을 통미통남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남한이 먼저 북한에 식량을 주겠다고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난 10년간 북한의 태도가 늘 그랬다. 여기에다 대북지원단체들이 ‘인도주의 지원에 무슨 정치적 고려가 필요한가. 굶는 사람에게 식량 주는 것이 먼저다’면서 잘못 오용되고 있는 ‘식량권’ 개념을 또 들고 나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북한에 굶는 사람이 많이 나오면 어설픈 식량권 논리 같은 것을 들이댈 필요도 없고, 국제관례에 따라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을 하는 것이 맞다. 지금 북한의 식량사정은 과장된 측면도 일부 없진 않지만, 데일리NK가 최근 입수한 북한 내부정보에 따르면 시장을 이용할 수 없는 지역, 배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직업군(군수공업 분야)의 가족 중에서 일부 아사자가 나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난해 이맘때에도 북한에 대량 아사자가 나오고 있다는 잘못된 관측이 있었지만 국가정보원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한 바 있다. 지금은 북한에 대량 아사자가 나오기 어렵다. 물론 대량아사 사태는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만에 하나 90년대 중반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조짐이 보인다면 유엔과 국제사회가 긴급재해로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식량난에 대처하고 있는 북한당국의 태도다. 북한당국은 주민들의 목숨보다 통미봉남으로 남한을 길들이려는 정치적 목적을 우선하고 있다. 주민들을 인질로 삼아 이명박 정부를 길들이려는 것이다. 김정일은 주민들의 생명권보다 자신의 ‘수령독재 유지권’이 더 중요하다. 자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은 오래 전부터 뒷전이었다. 이런 행태가 바로 김정일 정권의 ‘조폭주의’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런 상황을 분명히 알고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정확한 실태조사, 모니터링 강화방안 모색이 더 중요

첫째, 대북식량지원의 목적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식량지원을 하는 근본목적은 북한주민들의 목숨을 살리자는 것이다. 따라서 ‘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수혜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같은 목적을 분명히 하면, 이제부터 대북지원의 원칙은 ‘퍼주기’가 아니라 ‘잘 주기’가 되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정부와 남북교류협력단체, 대북지원단체들은 늘 많이 주려고 했다. 그렇게 해야 대북 영향력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는 ‘잘 주기’를 대원칙으로 해야 한다.

둘째, ‘잘 주기’ 위해서는 모니터링을 확실히 강화해야 한다. 지원식량이 실제로 주민들의 입에 들어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북한당국은 “우리민족끼리 무슨 분배 감시냐”며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쌀을 내려놓고 돌아가라”고 했다. 그런 다음, 김정일이 내려준 방침대로 먼저 군대로 가고, 그 다음 당, 보위부, 보안성 등 권력기관이 가져가고 맨 나중에 공장, 기업소 순으로 내려 갔다. 일반주민들이 한국 쌀을 먹어본 경우는 대체로 10% 이내였고, 대부분 권력기관들이 지원미를 챙겨서 남는 것을 시장에 되팔면,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돈주고 사먹는 어이없는 사태가 되풀이 되었다. 이제부터 분배 모니터링을 강화하여 일반주민, 근로자, 농민들에게 먼저 분배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모니터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제기구와 연대해야 한다.

세계식량기구(WFP)는 95년부터 대북지원을 해온 공식 국제기구이다. 재해국에 식량을 지원하고 분배를 감시해온 노하우가 있다. 정부의 대북지원도 이 국제기구를 통해서 하는 것이 더 낫다. 그렇게 해야 모니터링도 간접적인 국제공조가 되는 것이다.

물론 WFP도 북한의 실제상황보다 부풀려서 식량상황을 보고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국제사회로부터 지원받는 액수의 20%를 직원의 임금 등 행정비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공식 국제기구와 연대하면 모니터링에 더 힘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식량을 주는 목적이 대한민국 정부의 생색내기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입에 밥을 넣어주기 위해서다.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국제기구를 통하든, 우리가 직접 주든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주게 될 경우, 북한정권은 우리 정부의 감시를 배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국내 민간단체를 통해 주는 것도 이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대북 민간채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일을 오랫동안 해온 경험있는 일부 단체로 제한해야 하고, 과거처럼 어수선하고 방만한 민간채널들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북한체제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선물’을 주고 정보라고 얻어온답시고 선무당처럼 나설 일이 아닌 것이다. 국내 민간단체들의 이같은 태도가 오히려 북한 당국자들의 태도만 기고만장하게 만들어 왔을 뿐이다. 대북지원단체가 굳이 동참하고 싶다면 WFP와 공조해서 북한에 가서 모니터링 작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넷째, 다시 한번 확인해두는 것이지만 북한주민들이 굶는 근본 이유는 김정일 정권이 개혁개방도 하지 않으면서 그나마 시장이랍시고 있는 장마당까지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장이 있는 지역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식량난의 원죄는 분명히 김정일 정권에게 있는 것이다. 자국민을 그냥 앉아서 굶겨죽이고, 식량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는 이유로 이웃국가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을 잡아오는 경우는 그 옛날 중세 때도 없던 일이다.

우리 정부와 언론, 민간단체, 국제사회는 김정일 정권에게 시장을 통제하지 말고, 개방을 계속 요구하고 압력을 가해야 한다. 식량을 지원할 때마다 정부와 국제기구는 북한의 개방과 시장확대의 약속을 받아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오로지 개방을 거부하는 독재자 김정일 1인에서 기인한 인재(人災)다. 토질의 산성화, 홍수 등은 부차적인 이유다. 근본 이유는 집단영농제 때문이다. 북한의 전체 경작지는 남한보다 5만 정보가 더 많다. 대신 인구는 남한의 절반밖에 안된다. 집단영농을 개인농으로 바꾸면 2년내 북한은 식량 수출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개방하지 않고 계속 지금과 같은 체제로 간다면 지난 10년이 아니라, 앞으로 100년이 가도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게 되어 있다.

‘퍼주기’에서 ‘잘주기’로 가자

정부는 북한이 미국과 협상하여 쌀 50만톤을 지원받는 것에 대해 전혀 흔들릴 필요가 없다.

정부는 먼저 북한의 식량난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여 미국이 주려는 50만톤으로도 충분하다면 굳이 우리가 먼저 주겠다고 나설 필요가 없다. 만약 실태조사 결과 50만톤 보다 더 필요하다면 WFP에게 쌀을 주고 국제기구 일원으로 참여하여 모니터링 강화를 체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북한의 통미봉남 전술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북간에 핵폐기 프로세스가 잘 풀리면 좋은 일이듯이, 미-북 쌀지원도 모니터링이 잘 되고 북한주민이 먹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인 것이다.

정부는 통미봉남이 계속되고 미-북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게 되면 한국이 소외될 것이라는 초조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현재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핵심이다. 그 역할을 지금 단계에서 미국이 주도하든 중국이 주도하든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 정부는 “미국이 한국을 배제하고 북한에 영향력을 확대하여 남북을 분리통치하려 한다”라는 햇볕파들 중 일부 잘못된 주장에 절대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동맹이 근본부터 흔들린 결정적인 판단 오류가 미국이 북한과 관계개선을 하여 남북을 분리통치(devide and rule)하려 한다는, 당시 우리 외교안보 실세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 불신 때문에 작전계획 5029를 둘러싸고 한미간 격한 마찰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런 잘못된 판단이 청와대, 일부 국정원까지 퍼져 있었다. 결국 선무당들이 한미동맹을 한동안 망친 것이다.

북한의 식량지원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 우리 정부가 할일은 정확한 실태조사, 그리고 모니터링 강화를 위한 국제공조 모색이다.

이제부터 대북식량지원은 얼마나 많이 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주느냐가 핵심이다. ‘퍼주기’가 아니라 ‘잘 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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