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변화 막는 ‘선한 사마리아인’ ”

무조건적인 대북 지원이 오히려 북한의 정책변화를 가로 막으면서 정부가 ‘사마리아인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5일 주장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날 평화재단과 콘라드 아데나워재단이 공동주최한 ‘남북경제협력과 북한의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주제로 진행된 전문가포럼에서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예로 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선한 사마라인(선행을 베푸는 자)은 착하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사람에 대해 그가 누구이든 무조건 돕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게임이론상 도움을 받는 자가 이를 간파하면 노력하지 않고 도움만 기다리는 전략을 택할 것”이라며 “한국의 대북 식량원조는 ‘사마리아인의 딜레마’의 전형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 대북 인도지원에서도 정부와 민간은 북한에 대해 “스스로 노력하기 전에는 돕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인도지원의 증대와 지원 투명성의 증대를 연계시키는 전략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전략적 행동에 대해 “상대의 행동이나 신념을 자신에 부합하도록 변경시키는 것을 목표”로 북한에 있어서는 “‘당신이 스스로 노력하지 전에는 돕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대북 식량지원의 ‘사마리아인 딜레마’에 대해 ▲1995년 이후 외부지원은 증가하면서 수입이 현저히 줄었다는 점 ▲1998년 이후 다른 생산지표는 상승세지만 비료 생산은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 ▲식량난에도 농업생산 증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조치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2008년 식량위기는 중국과의 무역억제, 중앙검열 강화, 시장억제책 등을 취했다는 점 등 ‘도움을 받는 자’(북한)가 ‘선행자’(남한)의 전략을 간파했다고 분석했다.

박 연구위원은 또 “2007년 평화재단과 한나라당이 주관했던 ‘대북인도지원법’에 관한 논의는 ‘흔들림 없는 대북인도지원사업을 추진하려면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과 ‘지원이 투명하게 이뤄지면 국민이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지만, 후자의 것은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는 “인도지원 증대 필요성과 지원투명성 보장이 동시에 의제로 제기되고 통합되지 않는 한 한국정부와 시민사회의 인도적 개발지원의 미래는 암울하다”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남북경협’을 성립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고 단언했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남북협력’이란 북한 내의 ‘빈곤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데 이바지 하는 경제성장이 가능하게 만드는 남북협력이고, 이에 대한 핵심적인 조건은 ▲북한의 개발을 위한 정책의지 ▲북한 정책과 제도의 품질 ▲원조자가 북한 정책과 제도 품질 개선에 관여할 수 있는지 등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정책의지도 존재하지 않고 내부 정책과 제도의 품질도 매우 좋지 않다”며 오히려 “제공된 설비와 자본은 비효율, 무책임, 부정부패의 사슬 속에서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남북경협 정책의 주요 발상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고, 노무현 정부의 남북 협력의 정책적 발상이라 할 수 있는 ‘평화경제론’, ‘평화비용론’ 등의 영향력이 여야를 막론하고 전문가 사이에도 현재까지 강력히 남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정부의 식량차관에 대해서도 “남북관계 관리 목적으로 출발한 인도적 지원이 아니었다”며 “인도주의 원조였다면 북한 정부가 자유로이 처분하도록 전달하는 방식은 애초부터 선택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또 남북경협의 필요한 원칙으로, 원조가 나쁜 정책과 제도 변화를 기피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최우선적으로 북한이 정책과 제도의 품질을 개선하는 것을 돕는 경제협력이 돼야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수석연구원은 지속가능한 남북경협의 방향으로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의 분리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북 인도적 지원이 북한의 변화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인도적 지원의 대상과 방식을 명확히 하고 접근 방식 자체를 지원 대상에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