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남북합의존중’ 언급 배경은

정부가 19일 “남북간의 합의를 존중한다”고 밝힘으로써 제1,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해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였다.

통일부는 이날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17주년을 계기로 “기본합의서는 남북이 화해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며 공동번영을 추구한다는 정신에 입각해 있다”며 “그 이후 남북간 제반 합의도 이런 정신에 입각해 있다고 본다”고 평가한뒤 “우리 정부는 남북간의 합의를 존중하고 남북간 협의를 통해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비록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결국 맥락상 두 선언을 포함한 기존 남북간 합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과거에도 우리는 남북간 합의에 대해 존중하지 않는다고 한 적은 없기 때문에 이번 입장도 기존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현인택 장관도 이날 국회 상임위에서 ‘6.15,10.4 선언은 법적 구속력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는 입장을 밝혀 ‘합의 존중’이 합의를 무조건 이행하겠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6.15, 10.4선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기존 입장이 ‘합의 정신을 존중한다’는 것으로, 그동안 ‘존중이냐 부정이냐’는 논란을 야기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에서 관련 표현을 명확히 함으로써 논란을 불식시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는 이 대통령이 작년 9월22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지역회의 개회사를 통해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선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등 그간의 모든 남북간 합의의 정신을 존중한다”고 밝힌 이후 ‘정신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계속 표명하면서도 ‘합의를 존중한다’는 말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김하중 전 통일장관은 작년 11월 국회에서 6.15,10.4선언에 대해 “정신을 존중한다”면서도 ’선언을 존중한다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완전히 하나의 방침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나 싶다. 내부적으로 상당한 토의를 해야할 듯 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이날 통일부는 남북기본합의서 17주년을 계기로 기본합의서에 대한 정부 의 입장을 밝히면서 모든 기존 합의에 대해 ’합의 정신 존중’에서 ’정신’을 생략하고 ’합의 존중’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정부가 남북관계에 긴장도가 더 높아진 현 상황에서 이처럼 ‘레토릭’을 바꾼 것은 결국 6.15, 10.4선언이 갖고 있는 국내 정치적 민감성에도 불구,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직접적으로는 북한이 지난달 남북간 정치.군사 관련 합의의 무효화와 남북기본합의서 상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조항을 폐기한다고 밝힌 데 따른 대응의 성격이 없지 않다.

북한이 기본합의서를 포함한 남북간 기존 합의를 무효화하려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그 부당성을 지적하려면 우리부터 ‘합의의 정신을 존중한다’는 등 애매한 표현보다는 ‘합의를 존중한다’는 보다 분명한 입장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데 따른 것이란 얘기다.

이와 함께 어차피 6.15, 10.4선언 이행을 위해서는 후속 협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두 선언을 존중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정치적 논쟁이 계속되는 것은 남북관계는 물론 대북정책에 대한 국론통합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는 판단도 배경에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더해 당장은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하더라도 향후 남북 대화가 재개될 때를 대비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두 선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넘어가겠다는 의지도 담긴 것이라는 게 통일부 안팎의 평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