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사실상 국정 마비 상태가 지속되면서 자칫 외교·안보 분야에도 구멍이 뚫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안보 부처에선 기존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현 정부서 외교·안보 관련 사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자처해왔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균열이 예상된다.
전문가들 역시 국가 통수권자가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가적 외교·안보 역량 및 위신이 크게 하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 5차 핵실험에 대응한 대북 제재 관련 논의 과정이나, 새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과의 동맹 협의 등에 있어 동력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 일각에서는 향후 ‘정상 외교’에 박 대통령이 아닌 외교장관 등이 대리 참석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현 시국을 악용해 북한이 추가 핵·미사일 실험 또는 사이버 테러 등을 감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북한이 각종 선전매체를 통해 ‘최순실 파문’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수세에 몰렸던 북한에 태세 전환의 기회를 준 꼴이 됐다는 자조적인 반응도 나온다.
이에 데일리NK는 전문가들에게 현 시국을 타개할 방안과 앞으로의 외교·안보 방향에 관해 물어봤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온 국민의 감정이 격앙된 상황에서 당분간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 진단하면서도, 외교·안보 분야에 있어서는 한 치 흔들림 없이 지금까지의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 홍성기 아주대 교수
향후 1, 2년이 북핵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 최대 고비 기간이 될 텐데, 이 시기에 한국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지 못하면 굉장히 불안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시국이 이렇다 하더라도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일관된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 하나는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우산 등을 총동원한 방어체계를 구축, 북한의 도발을 억제해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설령 중국이 지지부진한 태도로 일관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대북제재를 초강도로 유지할 전략을 짜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정보 유입이다. 북한 스스로 더 이상은 정권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까지 정보를 유입해야 한다.
◆ 송대성 전(前) 세종연구소장
앞으로 어떤 형태의 정치 구조가 나오든 간에, 제일 주의해서 봐야할 것은 외교·안보 분야에 새로 자리를 잡을 인사들이다. 이 분야에 북한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들어간다든가 북한에 오염된 사람들, 혹은 한미동맹을 경시하는 사람들, 또는 북핵 위기를 절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들어가면 이건 굉장히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기존 정치 구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게 들어선다 하더라도 외교·안보 분야는 기존의 것을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합의에 부칠 사안이 아니다.
외교·안보는 국가 신뢰도 문제와도 직결된다. 만약 북한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자리를 맡게 되면, 한미동맹도 느슨해질 것이고, 우리 역시 동맹국으로부터 북한의 위협에 관한 정보를 얻지 못하니 안보 위험이 커지게 된다. 외교안보팀만큼은 대한민국의 가치와 한미동맹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돼야 한다.
◆ 송봉선 고려대 교수
현 시국은 대한민국 외교·안보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 최근 북한은 (대북제재 등으로) 정말 수세에 몰려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북한이 공세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상황이 계속되면 국가 안보의 집권 주체가 완전히 와해돼 국가안보에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외적으로 볼 때도 외교 분야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다른 나라와 외교적으로 협상을 하려 해도, 이 혼란스러운 정부가 과연 무엇을 실행할 수 있을지, 신뢰해도 될지 의심부터 하지 않겠나. 혼란스러운 시국이 계속되는 건 국가 이익에 엄청난 손해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북핵과 북한인권 문제 등에 있어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 해법을 마련해야 할 때다. 다만 총리를 비롯한 새 리더십이 과연 이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치권을 향해 국가 안보를 내팽개치고 정쟁만 해서 되겠느냐고 일갈하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일단 국가통수권자가 불미스러운 일에 엮이면서 외교·안보 상황이 겉으로는 불안정해보이는 건 맞다. 정상외교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주요 정상 외교는 차라리 국무총리나 외교장관을 부르는 게 더 나을 만한 상황이다. 다만 기존 외교·안보 시스템이 계속 가동 중인만큼 갑작스럽게 큰 혼란이 닥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여기엔 박근혜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는 지가 매우 중요하다. 박 대통령이 할 일은 책임이 부재하고 국정가치가 혼동된 거국 내각이 아닌, 구국(救國)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인사를 대폭 발탁, 국정 회복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