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무장 북한군의 민간인 사살사건’으로 규정하라

금강산 민간인 관광객 피격사건과 관련, 북한당국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다.

남측의 전화통지문도 안받던 북한당국이 사건 발생 하루만인 12일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명의로 대변인 담화를 내고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며 “남측은 우리측에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강하게 치고 나왔다.

담화문은 “군사통제구역을 침범한 그(관광객)를 발견하고 서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고 달아났으며, 공탄(공포탄)까지 쏘면서 거듭 서라고 하였으나 계속 도망쳤기 때문에 사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사고 발생시 현대측 인원들과 함께 현장 확인을 한 조건에서 남측이 조사를 위해 우리측 지역에 들어오겠다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사건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으니 북측에 사과해야 하고, 사고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하며, 진상조사를 위해 북쪽지역에 들어오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담화’는 한마디로 북측의 ‘주장’일 뿐이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면 먼저 객관적 사실관계가 밝혀져야 한다. 사건의 전모가 제대로 파악되기 전에는 그 어떤 주장도 ‘주관주의에 입각한 생각’일 뿐이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관련하여, 12일 오후까지 나온 ‘현장 판단 자료’는 대략 3가지다.

첫째, 북측이 현대아산에 통보한 사건의 경위, 둘째, 박씨의 시신을 검안한 속초병원 서명석 병원장의 소견, 셋째, 사건의 현장 목격자인 이인복 씨의 증언이다.

북측이 현대아산에 통보한 사건의 경위는 간단하다. ’11일 오전 5시경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53세 여)씨가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북한군 경계 지역에 진입하였고, 초병의 정지요구에도 불응하고 도주하여 발포하였다.’

이 짤막한 ‘사건의 경위’는 북측이 먼저 현대아산에 통보하고, 현대아산이 통일부에 전해주어 사건 발생 11시간 후인 11일 오후 4시 경 통일부 김호년 대변인이 브리핑한 내용이다.

둘째, 박씨의 시신을 처음 검안한 서명석 속초병원장은 “등 뒤쪽에서 날아든 탄환에 의해 흉부에 총상을 입고 폐 속에 혈흔이 고여 호흡 곤란 및 과다 출혈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 소견을 밝혔다. 그는 “총상 부위는 우측 등쪽에서 가슴 부위 관통상과 좌측 엉덩이 부분 관통상 등 2곳이었다”고 말했다.

박씨의 시신은 현재 서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사인규명 작업에 들어가 있다. 국과수의 사인규명 작업이 끝나면 박씨가 어떤 상황에서 총에 맞았는지, 초병이 얼마나 가까이서 사격했는지, 사격 당시 대상자 식별은 가능한 상황이었는지 등이 철저히 사실관계에 입각하여 밝혀질 것이다. 국과수의 전문가에 따르면 ‘사체는 사망 당시를 있는 그대로 증언한다’고 한다.

셋째, 사건 당시 거의 유일한 현장 목격자 이인복 씨의 증언이다. 이 씨는 “11일 새벽 어슴프레하게 날이 밝아올 때쯤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 해안가에 앉아 있는데, 아래 위 검은색 옷을 입고 머리에 흰색 천을 덮어쓴 한 여성이 내 앞을 지나 북쪽으로 걸어 갔으며, 10∼15분 뒤쯤 5∼10초 간격으로 2발의 총성과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렸다”며 “총소리가 메아리 쳐 바닷가를 울렸기 때문에 미사일 소리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그는 “잠시 뒤 녹색팬스가 있는 쪽으로 가 팬스와 바다사이를 이어놓은 1.5m가량 높이의 둑에 올라서보니 약 200∼300m거리에 한 여자가 쓰러져 있었고, 산 쪽에서 북한군 3명이 뛰어와 쓰러진 사람을 손으로 건드리며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명석 병원장의 소견과 이인복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피살자 박씨는 등 뒤에서 2발의 총을 맞았으며, 정조준 사격이었다’는 사실이 교차 확인된다.

따라서 북한당국이 “군사통제구역을 침범한 그(관광객)를 발견하고 서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고 달아났으며, 공탄(공포탄)까지 쏘면서 거듭 서라고 하였으나 계속 도망쳤기 때문에 사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주장 중에서 ‘사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대목에서 정조준 사격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러나 “서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고 달아났으며, 공탄(공포탄)까지 쏘면서 거듭 서라고 하였으나 계속 도망쳤기 때문에…”라는 대목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초병이 ‘왜 박씨에게 서라고 했는지, 박씨가 진짜로 응하지 않았는지, 공포탄을 실제로 쏘았는지, 정말로 거듭 서라고 했는지, 계속 박씨가 도망쳤는지’는 북측 초병의 진술을 토대로 한 확인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 덧붙여, 초병은 박씨를 언제, 어떻게 발견했는지, 박씨가 군사경계지역에 스스로 들어갔는지 초병 등이 먼저 들어오라고 유인했는지, 초병은 박씨가 남한의 민간 관광객임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비무장 민간인인지 무장 군인인지 식별 가능했는지, 여성, 남성을 구분할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 박씨가 저항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아닌지, 박씨를 얼마나 근접 사격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초병의 진술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문가의 수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북한당국은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으니 우리(북)측에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하면서 “남측이 조사를 위해 들어오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먼저 선을 그었다.

북측이 진상조사부터 거부한다는 것은 그 수작이 너무 뻔히 보여서 쓴웃음이 나온다. 북측이 발표한 대로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남측에 있고 담화의 주장도 모두 사실이라면, 북측은 ‘남북합동진상조사단’ 구성에 더욱 자신있게 착수하여 큰소리 치면서 조사에 들어가면 된다. 그래서 모든 진상을 명명백백히 있는 그대로 밝히고 남측 조사단을 부끄럽게 만들면 된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더욱 당당하게 관광 돈벌이를 하면 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향후 금강산 비로봉, 개성관광, 백두산 관광도 남측에 우위를 점하면서 달러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북한당국은 담화문으로 ‘선방’을 날리며 들어오는 것일까. 또 현대아산은 사업 상대자일뿐 조사기관도 아닌데 북측은 ‘현대측 인원들과 함께 현장 확인을 했다’는 식으로 현대에 비비적 거리며 기대는 것일까.

지금 북한당국은 ‘사건의 성격규정’을 먼저 해놓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즉, 이 사건을 ‘법적 문제’로 보지 않고 ‘북측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과 현대아산 간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하여 ‘전적으로 피살자 박씨의 잘못’으로 몰아가면서 향후 전개될 남북 당국간의 공방에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과 현대아산 간의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해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먼저 이 사건을 국제규범의 측면에서 ‘무장군인의 여성 민간인 사살(학살)사건’으로 규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만약 동서독 분단 시기 서베를린의 민간인 비무장 여성 관광객이 동베를린에 여행 가서 군사경계지역을 잘못 오인하고 들어갔는데, 동독 군인이 그 여성을 비무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하원칙을 무시하고 등 뒤에서 총으로 쏴죽인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과연 서독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을 것인가를 염두에 두면서, 한국정부는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현재 남북간의 국제법적 관계는 냉정하게도 ‘교전이 일시 중지된 상태'(停戰)이다. 즉, 이 사건을 ‘무장 북한군이 박왕자라는 53세의 비무장 여성 민간인을 사살한 사건’으로 바라봐야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진상조사단이 구성되어 현지에 파견되고 초병의 진술, 현장검증 등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판단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청와대에서 긴급 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며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단 한명의 국민 생명도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책임진다는 자세로 이번 사건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대통령은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한 시간대에 저항능력도 없는 민간인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해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신속한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후속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필자는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한 시간대에 저항능력도 없는 민간인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해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것”이라는, 이 사건의 ‘성격규정’에 동의한다.

그러면 정부는 어떤 방향에서 이 사건을 해결해가야 할 것인가?

가장 먼저는 수차 강조한대로 진상규명이다. 그 다음, 책임자 처벌→사과→배상→재발방지 약속 및 조치→금강산 관광 재개 순으로 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또 진상조사단의 북측 상대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서(통전부)가 되어야 할 것이며, 남측의 홍양호 차관에 걸맞는 제1부부장급 이상이 책임자로 나와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앞으로 우리사회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북한은 남한 정부를 따돌리고 협박하며 여러가지 술수를 부릴 것이다. 남한 내부에는 광우병 괴담과 폭력 선동자들처럼 진실을 규명하기 보다 ‘남북관계 발전’ 운운하며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대충 덮고 넘어가자’는 일부 저질 단체들과 자칭 ‘전문가’들이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고, 또 여기에 편승하려는 저질 인터넷 매체들이 괴상한 논리로 선동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언론, 그리고 실력있는 시민단체들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끈질긴 지구력을 갖고 이 사건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우리측에 먼저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나왔다. 북이 먼저 남측에 매를 든 것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 바로 이런 경우다. 하지만 겁먹은 강아지가 먼저 짖는 법이다. 정부는 원칙과 정도로 가는 것이 옳은 전략이다. ‘남북관계 발전’이란 궁극적으로 북한을 국제규범화, 정상국가화로 몰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