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제기구 `北식량사정’평가 달라 눈길

“엄청나게 우려스럽다. 최악의 식량난 상황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고팔란 발라고팔 유니세프 북한 사무소 대표, 23일 국내 세미나에서)

“현재 북한의 식량사정이 심각한 위기상황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김호년 통일부 대변인,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 식량 사정을 놓고 북한에서 활동하는 국제기구와 정부 남북관계 주무부처의 평가가 이처럼 크게 달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우선 현장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 식량난을 분석하는 국제기구들은 함경도와 량강도 지역에서 35~40%의 어린이가 영양 실조 상태라는 점, 공공배급 의존자의 25%만이 하루 세끼 식사를 하고 있다는 점 등 구체적 수치를 근거로 북한의 사정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또한 국제기구 측은 ‘식량 접근권’ 측면에서 함경북도 등 동북부 지역이 특히 심각함을 지적하며 식량 확보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에 주목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시기적으로 현재 북한이 별다른 자연재해 없이 가을 추수기를 맞아 급한 고비를 넘겼다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또 북측 당국이 올해 작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방북활동을 마친 민간 단체 관계자들로부터 전해지고 있다는 점도 감안하고 있다.

김호년 대변인은 24일 “추수가 시작된 가운데 올해 호우 없이 기상조건이 상당히 좋았다는 점 등을 보면 현재 북한의 식량 사정이 심각한 위기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결국 정리하자면 국제기구들은 취약 계층 및 취약 지역의 상황을 주된 근거 삼아 북의 식량난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정부는 자연재해 없이 가을추수가 정상적으로 진행된 만큼 북한이 식량 절대 확보량 측면에서 급한 불을 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 국제기구들은 순수 인도적 측면에서 각국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지원을 끌어 내려는 입장인 반면 우리 정부는 식량 지원 역시 현실적으로 남북관계 상황 전반과 따로 떼어 놓고 볼 수 없는 입장이라는 점도 뉘앙스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가을추수 규모가 구체적으로 파악돼야 현 단계 북한의 식량사정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농업성 관계자가 올해 480만t의 곡물을 수확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가을 걷이가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정확한 수치는 아닌 것으로 정부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 등이 현재 북한에서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다음달 중순이면 2009 식량 회계 연도(2008.11~2009.10)의 식량 부족분에 대한 예상치가 어렴풋이나마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북한의 가을 작황이 좋다 치더라도 북한이 만성적인 식량난에서 벗어나긴 어렵다는게 전문가 대다수의 입장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권태진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북한 곡물수확량이 480만t이라고 쳐도 그들은 도정을 하기 전 상태를 기준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우리 개념으로는 420만t 수준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올해 우리 정부가 비료지원을 안했기 때문에 북한의 내년 봄 수확도 올해 봄과 비슷한 50만t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면 올가을 추수량을 포함한 2009년도분 북한의 자체 식량 확보량은 420만t 선에 그친다”며 “미국.중국 등으로부터 50만t 정도 추가로 도입한다고 해도 한국의 지원이 없으면 최소 수요량에 비해 50만t 이상 모자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즉 북한이 올 봄에 수확한 것으로 추정되는 50만t은 이미 소진됐을 것이기에 올 가을 거둬들일 370만t의 곡물과 내년 봄 50만t 등 420만t으로 내년 가을 수확기까지 연명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지원이 필요할 것이란 얘기다.

자급에 필요한 북한의 곡물수확량은 대략 520만~540만t으로 추정되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