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열린 외교통상부 국정감사에서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 등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동맹의 불균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감에서 “미국 국내 정치 차원에서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번 조치로 북핵 문제가 악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한국의 문제는 한국이 스스로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 소위 제2의 ‘애치슨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당 홍정욱 의원은 “테러지원국 해제는 부시 대통령의 임기말 조급증과 김정일 위원장의 결사적인 도박이 부합한 결과”라며 “미국의 상황에 따라 핵폐기보다 핵확산방지라는 차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확인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의원도 “테러지원국 해제는 임기가 끝나는 미국 정부의 외교상 가장 큰 실책”이라며 “테러지원국 지정 계기가 된 대한항공 폭파사건에 대한 해명 없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것에 대해 의의를 제기한 적 있냐”고 물었다.
특히 이번 미북간 검증 합의에 있어 북핵의 완전한 폐기라는 목표가 양보된 것 아니냐고 의원들은 지적했다.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은 “이번 미북 합의는 코너에 몰린 부시 행정부의 외교성과 만들기 아니냐”며 “미북 합의 과정에서 완전하고 철저한 핵검증이라는 우리 정부의 원칙이 훼손됐고, 한국의 안보가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의원은 “미북간 검증합의가 발표된 후 우리 정부는 북한 비핵화의 진전이라고 평가했다”며 “그러나 불능화 중단 작업이 재개된 것은 원상회복이지 어떻게 진전으로 볼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유 장관은 이에 대해 “(테러지원국 해제에 있어) 한미간 긴밀한 협의를 거쳤고, 마지막까지 우리의 의사가 철저히 반영됐다”며 “한미간은 북핵 폐기라는 목표를 같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것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의 문제”였다”며 “(테러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북한을 응징해야지, 미국을 나무랄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북한의 신고 내용과 검증 내용이 다를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의 질문에는 “6자회담 참가국들과 협의해서 처리해야 할 문제이지만, 북한에 대한 제재 해제 복원 조치 등이 상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관련국들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유 장관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느냐”는 한나라당 이춘식 의원의 질문에 “과거 북한의 핵 재처리 정황으로 잠정적으로 추정하는 것이지 정확히 검증했거나 확인해 본적은 없다”며 “정부는 (북한에 핵이)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난 정부에서도 북한이 핵을 1~2개 보유했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 전체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인데 장관의 이 같은 대답은 정부가 무능하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유 장관은 앞서 북핵 문제에 대한 현안 보고에서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해 “WMD 확산이나 인권침해에 대한 대북제재들이 여전히 중첩적으로 존속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실질적으로 얻는 효과는 미비하며, 북한도 이를 인지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변경을 집요하게 요구해왔기 때문에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한 상징적, 정치적 의미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향후 북핵 폐기 과정에 대해서는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6자회담에서 미북간 협상 결과를 검토해 검증의정서를 공식적으로 채택하는 절차가 남아있다”며 “검증활동에 필요한 세부사항을 담은 검증이행계획서 등 후속조치에 대해서도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7월 6자회담 당시 10월 말까지 북핵 불능화와 경제에너지 지원을 완료하기로 합의했지만 북한의 불능화 역행으로 기한을 맞추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핵폐기 2단계 마무리에 대해서도 협의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북간 납치자 문제가 긍정적 방향으로 진전돼, 일본이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며 “우리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6자회담 개최 시기에 대해서는 “의장국인 중국이 관련국들의 사정을 취합해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며 “현재로서는 10월 말 이후가 될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