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라”…장군님 한마디에 수백 세대 ‘철거’

▲철로주변에 들어선 북한 주택들의 모습.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노동자구 풍경.ⓒ데일리NK자료사진

지난 4월 18일 양강도 혜산시. 여느 때 같으면 토요일 인민반 생활총화와 간부 강연회로 온 도시가 분주할 시간이다. 도당 조직비서 김경호를 비롯해 양강도에서 힘깨나 쓴다는 간부들이 총출동해 성우동 근방 철길에 늘어섰다.

이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장군님의 3월 4일 방침관철을 위한 철길주변 살림집 정리 착공식’이 열렸다. 그런데 장군님의 방침을 집행하는 간부들의 표정이 영 말이 아니었다. 최고 간부의 연설도 생략된 채, 행사에 동원된 주민 몇 명이 철길 옆 낡은 농가 하나를 부수는 것으로 착공식은 끝났다. 지켜보는 간부들이나 동원된 주민들이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이주할 주택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는데 ‘철거’부터 시작됐다.

발단은 지난 3월 4일 김정일의 양강도 삼지연군 현지지도였다. 함경남도 북청과 혜산을 잇는 도로를 따라 삼지연에 들어오던 김정일은 철길 옆에 조잡하게 들어선 주택들을 보면서 한마디 던졌다.

“철길 주변이 왜 이렇게 어지럽나? 올해 중으로 철길주변의 어지러운 살림집들을 모두 정리하라!”

김정일은 “철길주변을 도시 미관에 맞게 잘 꾸리는 것은 나라의 얼굴을 가꾸는 중대한 사업”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 김정일의 말은 모든 법과 제도를 초월하는 ‘교시’. 그의 몇 마디 말에 ‘3.4방침’이라는 제목이 붙어 양강도 지역 전 간부들에게 전달됐다.

북한은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철길 주변에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 ‘철길주변 50m 이내’에 살림집을 비롯한 어떤 공공건물도 짓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지만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일반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철로 주변은 일종의 ‘역세권’ 지역이다. 물론 열차가 운행될 때는 매우 위험하지만 실제 운행 횟수가 하루 한두 차례도 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은 잠시 한순간이다.

철로는 다른 길보다 직선이기 때문에 직장 출근을 하거나 시장에 나갈 때 시간을 단축시켜준다. 포장도로가 없는 북한에서는 비나 눈이 올 때면 철로 침목을 밟고 다니기도 좋다. 특히 양강도와 함경북도 국경도시에서는 압록강~두만강과 나란히 철로가 놓여 있어 중국과 밀수에도 유리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직장 출퇴근과 장사하기 좋은 위치를 선호하는 주민들의 경쟁속에서 일부 간부들이 뇌물을 받으며 살림집 건설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북한의 중소도시에는 철길에서 불과 10m 안팎에 살림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양강도 내부소식통은 23일 ‘데일리엔케이’와 통화에서 이날 행사를 전하며 “올해는 철길 주변 살림집 공사로 세월을 다 보낼 판”이라며 “앞으로 숱한 사람들이 쫓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혜산시의 경우 철길주변 50m 이내의 살림집들만 허물어도 수백 세대가 이주해야 한다”며 “(국가에서) 새집을 지어준다 해도 도시 외곽 밖에 땅이 없는데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그는 “새집을 지어주면 좋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이주사업의 경우 모두 날림식으로 집들을 짓는다”면서 “차라리 자재들을 본인들에게 주고 알아서 집을 지으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혜산 시내 철로 주변 주택에서는 방 한 칸을 세내어 공부하는 제대군인 대학생 가정들이 많다. 이들은 더 답답하다. 철길주변 인민반들에서는 매일 같이 회의를 열고 이주세대 선정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고성이 오가고 주먹질이 난무하는 등 원만한 합의는 요원하다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혜산 시당은 종업원 인원수에 따라 각 공장·기업소들에 새 주택 건설을 강제로 할당했다. 북한 당국에서 공급하는 자재는 새 주택 한 채 당 온돌을 놓을 시멘트 300kg이 전부다. 기타 자재들과 운송수단들 모두 공장·기업소에서 마련해야 한다.

새 주택 건설과 관련해 철로주변에 살지 않는 주민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혜산시 주민들은 한 가구당 토피(진흙에 볏짚을 섞어 말린 벽돌) 500장씩 만들어 바쳐야 한다. 공장들마다 벌써부터 휘발유 및 각종 자재들을 확보하느라 쌀 2kg 값도 안되는 노동자들의 월급을 절반씩 거둬들이고 있다.

소식통은 “지난 1992년에도 혜산광산에 배치된 제대군인들을 위해 1천 세대 살림집들을 지었지만, 3년도 못가 절반이상이 집을 버렸다”며 “삼지연군 포태리나 대홍단군에 지은 살림집들도 겉은 번듯해 보이지만 모두 날림식으로 지어 지금까지도 제대군인들이 고생하며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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