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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이 17일로 예정된 남북 열차 시험운행 행사 초청자 명단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정 전 의장은 ‘전직 통일부장관’ 자격으로 경의선 문산역-개성역 구간(27.3㎞) 시험운행 열차에 탑승할 예정이었으나 행사를 6일 앞둔 11일 통일부로부터 참석불가 통보를 받았다.
정동영 측근에 따르면 “3주쯤 전에 정 전 의장이 가까운 의원들과 행사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통일부가 3∼4일 전 탑승자가 100명으로 제한돼 있어 정 전 의장만 참석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알려와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오늘(11일) 갑자기 참석대상에서 빠졌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 전 의장측은 통일부의 이 같은 통보가 최근 당 존폐 문제를 놓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격론을 벌이면서 냉랭한 관계로 돌아선 것과 무관치 않은 게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통일부 관계자는 “6.15 정상회담 당시 수행한 고위직 인사를 중심으로 참석범위를 정한 것”이라며 “최근 노 대통령과의 관계와 연관이 있다는 추측은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고 12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또 청와대도 정 전의장측의 문제제기는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몸으로 직접 깨닫는 반면교사
그러나 이같은 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현 정부의 ‘빤한 수작’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아 쓴웃음이 나온다.
이번 남북철도 연결 시범운행은 비록 1회에 한하여 연결행사를 갖는 것에 불과하지만, 즉 ‘1회용 정치 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긴 하지만, 끊어졌던 남북간 철길을 56년만에 다시 잇는 행사이기 때문에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중고등 학교 교과서에도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기관차 사진이 등장한다. 사진을 보면 기관차는 ‘꽤액~’하고 금방 기적(汽笛)을 울리며 달려나갈 태세다. 그러니, 나이 50을 넘긴 정치인들이라면 56년만에 다시 잇는 철길연결 행사에 참여해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정치적 폼’을 한껏 잡고 싶은 욕망이 누구라도 다 있을 것이다.
특히 정동영 전 의장은 통일부장관 시절 김정일과 면담까지 했고, 금방 북핵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폼을 잡으며 북한에 200만KW 전기공급까지 약속한 장본인이 아닌가. 그런 ‘혁혁한 공적’을 세웠는데 자기 이름이 빠졌으니, 자신으로서야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통일부로부터 명단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11일 밤, 정 전장관은 아마도 울화통이 터져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통일부와 청와대가 말로써는 “참가 범위를 2000년 6.15 주인공들로 한정한 만큼 정 장관님은 부득이 빠지게 되었음을 양해해 주십시오”라는 것이지만, 현 정권 핵심들이 “우리끼리 잔치 벌이려 하는데, 전직 통일부 장관이라 해도 열린당을 깨겠다는 그 미운 털을 뭐하러 끼워주나?”라는 ‘못된 심뽀’를 왜 정 전장관이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게다가 행사 참가명단 100명이 다 밝혀지고, 거기에 ‘6.15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물’ 한 명이라도 들어가 있을 경우, 정 전 장관은 ‘도대체 노정권 사람들은 일말의 정치 도의도 없는 X들’이라며, 시쳇말로 ‘뚜껑’이 열릴 것이다.
또 정 전 장관이라면 더더욱 눈에 훤히 보일지 모른다.
이번 남북철도 행사를 매개로 친노 대권주자들-이해찬, 한명숙, 김혁규 등-이 비록 철도연결행사에는 참석하진 않지만, 이같은 행사를 통해 이들에게 남북문제를 대선의 핫이슈로 던져주면서, 이른바 김대중 전대통령을 위시한 ‘6.15 세력’과 호남세력을 묶어 대권장사 준비를 하겠다는 현 정권의 ‘정치 잔머리’를 왜 정 전 장관이 모르겠는가.
사람이 서로 좋아하다가 일이 잘못되어 헤어지게 되면 아예 안 만난 것보다 더 미워진다. 마음속 증오심이 더 커지게 되는 것이 홍진세속(紅塵世俗)의 평범한 삶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 야속함이 완전히 거두어지려면 적지 않은 시간동안 마음속 풍화(風化)작용을 거쳐야 한다.
그런 만큼, 지금 정동영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과 주변 친노 일당들이 정말로 미울 것이다. ‘그래? 이것들 어디 한번 두고보자’는 투지가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이다. 또 그런 투지가 더더욱 친노세력과의 확실한 결별을 부채질 하게 될 것이다. ‘저런 인간들과는 다시 상종하지 않는다’는 결심과 함께….
그러나 정 전 장관이 이같은 ‘사태’가 왜 오게 되었는가를 객관적으로 깨닫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무슨 말인가? 남북문제를 남한내 정치문제, 즉 당리당략으로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큰 패악을 가져오는가를 정 전 장관이 사무치게 깨닫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이야기다.
정 전 장관은 2년 전 6.15 행사 때 평양에 가서 김정일을 ‘알현’했다. 서올에 돌아온 그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김정일을 ‘시원시원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고 추켜 세웠다. 김일성 주석 유훈 운운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전문가들이 들으면 뻔하게 다 아는 하품 나는 이야기를 그는 정말로 핵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늘어놓았다. 그게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정 전 장관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김정일의 발언을 정말로 믿었다면 통일부 장관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고,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정 장관도 남북문제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남한내 정치적 주가를 올리는 데 북한문제를 사용(私用)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 남한내 정치인들이 북한문제를 다루는 기본 시각이다. 이번에 평양에 간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북한 것이 아니라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주가를 올리려 한번 가본 것이다. 이런 행동이 뻔하게 다 아는 정치적 수작인 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손 전지사와 주변 인사들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 정 장관 자신은 ‘남북 철도연결 행사참여 제외’라는 ‘억울한 사태’를 맞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이번 기회에 정 장관이 정말로 남북문제를 남한 정치문제로 다뤄서는 안되겠다는 사실을 한번쯤 뼈저리게 깨닫는 기회로 활용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노무현과 그 측근 일당들의 ‘정치 잔머리’를 보면서 정 장관 자신도 깨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북한문제를 남한 정치용으로 이용해서는 절대 안되겠다는 정치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것이 또 몸으로 직접 깨닫는 반면교사(反面敎唆)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