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장관, 한미동맹 CVID 자살골

▲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김정일과 정동영

정동영(鄭東泳) 통일부장관이 2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 북핵문제 해법과 관련한 한국의 ‘중대제안’을 6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먼저 제의한 후 미국에 설명했다고 말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정 장관은 이날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의원이 “대북 중대제안에 대해선 한미간에 의견교환이 된 것이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에게 제안된 후 미국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핵문제와 관련, 6월 10일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핵공조’가 확인된 마당에 한미 동맹관계 기조를 깨트리는 행위로서 큰 파문이 예상된다.

정 장관 설명대로라면 지난 10일 한미정상 회담이 있은 지 일주일 만에 한국은 미국과 협의하지 않고 북한에 중대 제안을 한 셈이다.

정 장관은 이 중대 제안을 “핵 문제를 더 이상 끌지 않고 획기적으로 타결 짓겠다는 차원”이라고 언급했다. ‘중대제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진행된 6자회담 논의 수준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北에 先제안, 美에 後설명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제안한 내용이 여전히 유효하며 북한이 답할 차례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당시까지도 미국은 한국이 내놓은 중대제안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한국 정부는 앞에서는 동맹과 손잡고 뒤에서는 북한과 몰래 뒷거래를 한 셈이다. 또한, 북한 핵문제의 획기적 타결까지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협상안을 관련국과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북한에 제안한 것은 매우 심각한 ‘탈선(脫線)’에 해당한다.

노 대통령은 “(한미간) 북핵 문제의 기본원칙에 완벽하게 합의하고 있고, 협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원칙은 북핵 대응 절차를 포함한다. 북한에 중대 제안을 먼저 하고 사후에 미국에 통보했다는 것은 한미공조라는 기본 원칙을 훼손한 것이다. 더 이상 한미 양국이 북핵 대응에 ‘한 목소리(one voice)’라는 노 대통령의 말을 국민들은 믿을 수가 없게 됐다.

정 장관 先 제안, 북핵 민족공조 확인한 셈

회담장을 뛰쳐나간 북한을 달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주변국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새로운 유인책을 제시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미국은 조건없는 복귀를 강조하고 있다. 긴밀한 공조를 강조한 한국이 미국이 세우고 있는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 워싱턴이 어떻게 반응할 지 걱정이 앞선다. 최소한 사전 협의는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이 이번 ‘중대한 제안’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는 어떤 복안(腹案)이라도 세워두었는지 궁금하다.

한미정상은 회담장에서는 동맹과 공조를 강조하면서도 제 자리로 돌아가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곤 했다. 정 장관의 이번 발언을 통해 우리 정부는 북핵 해결에서 튼튼한 한미공조보다는 민족공조, 북-미간 중재자 역할에 더 치중한 것이라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 정부는 초기부터 동맹과 민족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신호를 보내왔다. 이번 정 장관의 북한에 대한 선(先) 제안은 스스로 민족공조 우선 정권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노 대통령은 지난 13일 연설에서 북한 핵 포기를 위해 체제 안정과 경제발전 전기를 마련하도록 매우 구체적이며 적극적인 지원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대한 제안의 윤곽을 드러낸 발언이었다.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해도 HEU 문제, 핵 폐기 범위와 대상, 핵 사찰 방법 등 타결이 쉽지 않은 문제가 한 두 개가 아니다. 또한, 미국과 사전 협의 없는 체제 보장안을 북한이 얼마나 신뢰하겠는가? 한국은 주도적 역할에 집착한 나머지, 월권을 행사하고 말았다.

핵 보유국으로 치닫고 있는 북한이 민족공조를 위해 몇 가지 ‘말 선물’을 보냈다고 해서 마치 핵문제도 금방 풀릴 듯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남한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우리 정부만 읽지 못하는 큰 착각을 지금 범하고 있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한미공조는 북핵 파국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안전판이다. 정장관의 행동은 한미동맹 관계를 무참히 깨뜨리는 자해행위다. 한마디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CVID)’ 방식의 자살골을 넣은 것이다.

신주현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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