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장관 ‘출제’, 희한한 문제 3가지

▲ 정동영 통일부 장관 <사진:연합>

어떻게 하면 북한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북한 제대로 알기와 등산은 비슷한 게 많다. 산에 오르면 안다. 5부 능선에 오르면 5부 능선의 시야만큼 눈에 잡힌다. 8부 능선에 오르면 시야는 더 넓어진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팔방이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8부 능선에 올라온 사람은 5부 능선에 위치한 사람의 주변 사정을 안다. 어떻게? 자기가 이미 거쳐왔기 때문에. 그러나 거꾸로는 성립하기 힘들다. 왜? 5부 능선에 있는 사람은 아직 8부 능선까지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문제만이 아니다. 사물과 현상은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전문가, 비전문가가 있고 고수(高手)와 하수(下手)가 있다.

3가지 기준, ‘출제’부터 잘못돼

얼마 전 어느 기자의 블로그에서 보았다. 정동영 장관이 최근 서울 교육인적자원 연수원에서 전국 시군구 교육장 180명을 상대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북한을 대결과 반목의 대상으로 보느냐, 화해협력의 대상으로 보느냐. 북한을 붕괴시킬 대상으로 보느냐, 공존대상으로 보느냐. 남북격차를 넓혀가야 하느냐, 좁혀가야 하느냐. 이 3가지 기준을 놓고 전자(前者)를 선택하면 당신은 냉전주의자다.”

다시 등산을 생각해본다. 정장관은 북한인식에서 몇 부 능선쯤 올라와 있을까.

정장관이 내놓은 3가지 기준은 ‘출제’부터 잘못된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 북쪽의 땅(국토)과, 그 위에 사는 사람(국민)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제하는 사회적 관계(제도)로 구성돼 있다. 사회적 관계는 정치제도, 경제제도, 사회문화제도로 대별된다. 하나의 국가가 국토, 인구, 사회제도로 구성된다는 것쯤은 정장관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일반사회 과목 제1장에서 공부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장관이 말하는 ‘북한’은 도대체 무슨 북한을 말하는 것인가? 땅인가, 2천3백만 주민인가, 아니면 전체주의 1인 독재의 제도를 지칭하는 것인가? 무엇을 대결대상으로 보고, 무엇을 화해협력 대상으로 본다는 말인가?

북한땅과 2천3백만 주민은 우리와 화해협력의 대상이다. 우리는 북녘의 산하를 우리의 국토처럼 아끼고 가꾸고 사랑해야 한다. 2천3백만 주민들은 우리와 한반도의 미래를 함께 개척해 가야 할 형제들이다.

그렇다면 전체주의 1인 독재는? 당연히 우리와 화해협력의 대상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1인 전체주의 독재가 양립하여 화해협력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두 가지 제도를 함께 섞은 비빔밥 체제는 가능하지도 않다.

정장관은 국가 공동체의 3가지 구성요소들을 한데 섞어 그저 막연하게 ‘북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참으로 단선적이고 관념적인 사고패턴이다.

김정일 정권과 북한주민 분리해야

정장관이 제시한 3가지 기준은 더 명료해져야 한다.

북한을 대결대상으로 보느냐, 화해협력 대상으로 보느냐. 이 기준은 북한주민과는 화해협력, 전체주의 독재정권은 협상과 대결의 대상이다. 이것이 정답이다. 만약 정장관이 ‘관념 사회주의자’들처럼 남북 체제를 적당히 섞으면 북유럽형 사회민주주의와 비슷한 체제가 태어날 것이라고 착각한다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북한을 붕괴시킬 대상으로 보느냐, 공존대상으로 보느냐. 이 기준은 김정일 정권을 개혁개방 정권으로 바꾸거나 민주주의 정권으로 교체하는 것이고, 공존대상은 새로 들어서는 개혁개방 정부와 북한주민이다. 이것이 정답이다. 북한을 ‘붕괴’시킨다면 무엇을 붕괴시킨다는 말인가? 북녘 땅을 통째로 붕괴시키겠다는 말인가, 2천3백만 인구를 붕괴시키겠다는 말인가?

남북격차를 넓혀가야 하느냐, 좁혀 가야 하느냐. 이 기준은 북한주민과는 격차를 좁혀가고, 김정일 독재정권은 약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정답이다.

결국 북한주민과 김정일 정권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냉전주의 관점이냐, 화해협력 관점이냐’며 내놓은 기준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것이다. 문제인식부터 잘못됐으니 스스로 제시하는 답도 엉뚱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자가 냉전주의자라?

정장관이 내놓은 식의 기준대로라면 결국에는 전체주의 독재정권을 도와주지 않겠다는 민주주의자들은 모두 냉전주의자가 된다. 북한의 인권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과 수교하지 않겠다는 프랑스 사람들도, 인권을 거론하고 전체주의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전 세계인들도 모두 냉전주의자가 된다. 정장관은 냉전주의냐, 화해협력이냐를 내놓고 ‘친김정일이면 화해협력주의자’라는 오도된 논리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김정일 정권과 북한주민들을 분리해서 대처할 수 있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옳은 질문이다. 그래서 ‘전략’이란 것이 필요하다.

김정일 정권과 얼마든지 대화하고 협상할 수 있다. 남북대화는 계속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대화와 협상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지, 요상한 논리로 김정일 정권과 화해협력하자고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북한주민과 화해협력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짜내면 얼마든지 있다. 비전향장기수를 보내면 납북자・국군포로를 돌려받고, 금강산・백두산에 우리 학생을 보내면 북한 학생들도 설악산・지리산에 보내 남북청년학생 국토순례하자고 제의라도 한번 해보라. 아리랑 축전에 관광객 보내면 전국체전에 평안도 선수, 함경도 선수들을 대거 불러들여라. 왜 못하는가? 왜 김정일이 골라서 보내주는 미녀 응원단에 만족하는가?

북한인권문제를 정직하게 인식하고 통일부에서 제기하기 어렵다면 국가인권위에서 제기하도록 하라. 왜 원칙부터 세우지 못하는가?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를 누가 먼저 짜내야 하는가. 국민세금으로 월급받는 통일부 장관이 먼저 해야 하는가, 국민들이 세금도 내고 아이디어까지 짜내 장관에게 갖다 바쳐야 하는가?

대북인식 기초부터 닦아야

문제는 아이디어 짜내기 차원이 아니라 먼저 정장관이 북한에 대한 인식부터 정확히 세우는 것이다. 그 출발은 김정일 정권과 북한주민들을 철저히 분리해서 사고하는 대북인식의 기초를 닦고, 대북전략의 원칙부터 세워놓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장관이 김정일 독재정권의 힘을 빌려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나 차지해보려는 사람으로 오인받을 수 있다. 유권자들은 이미 차기 대선에서 불어닥칠 새로운 북풍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다. 원칙부터 세워놓지 않으면 그 역풍은 고스란히 정장관이 맞을 수 있다.

지금 정장관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김정일 개인에게 거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남북관계에 관한 한 김정일은 정장관보다 훨씬 고수(高手)다. 지금쯤 정장관은 고인이 된 정몽헌 회장을 떠올려야 할 때일지 모른다. 정장관은 ‘북한실력’부터 길러야 한다.

손광주 편집국장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