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대권 수능 1교시’를 치르다

▲ 지난해 12월 베이징 방문시 정동영 장관

남한의 차기 대통령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북한문제’가 될 것이다. 임기 내내 이 문제에 매달려야 할 것이며 그 다음 정부까지 과제를 남겨주고 갈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남북관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복잡한 고민을 동반할 것이며, 차기 대통령은 여러 차례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 근거와 전망에 대해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현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중에 북한이 붕괴될 가능성을 20~30%, 차기 대통령의 임기 중에 붕괴될 가능성은 70~80%로 본다.

남한 차기 대통령, 위기관리와 결단의 리더십이 1순위

사실 남한에는 ‘○○계획’으로 명명된, 북한 유사시 대응 메뉴얼이 작성되어 있지만 정말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남한 정부가 매뉴얼대로 할 수 있을 지 회의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지금은 쉽게 “북한은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라며 “유사시 남한이 주도권을 갖는다”고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 남한의 뜻대로 전개될지 의문이다.

이때 남한의 최고지도자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북한에 군대를 파견하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북한에 수립될 새 정권과의 관계, 통일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과정, 남북 주민들의 서로 다른 요구를 조절 통제하는 문제 등 하루에도 수십 건씩 역사적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때론 눈물을 머금고 단호하고 냉정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며, 개인의 정치적 인기와 국가의 장기적 이익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도 있을 것이다.

차차 검증이 되겠지만 남한의 차기 대선후보를 평가할 때에는 그런 위기관리와 결단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힐 것이다.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통일부 장관, NSC의장 겸직

그런 의미에서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다른 예상후보들보다 ‘노른자위’의 자리에 앉아있다. 통일부장관뿐 아니라 NSC 의장까지 맡아 우리나라 통일 ∙ 외교 ∙ 안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며, 북한의 내부와 북한정권의 생리를 알고 그것을 다뤄보는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자리, 그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당내의 대권경쟁자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보다 몇 배는 유리하고 중요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정장관에게 약이자 독이다. 차기 대권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히는 위기관리와 결단의 리더십을 분명히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장관이야 특별히 큰 정책적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단기간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지금 정장관은 정세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면서 능력과 성과가 뻔히 드러나는 자리에 있다.

정동영씨가 통일부장관이 된 이후 지난 1년여의 기간의 점수를 어떤 이들은 낮게 주지만, 필자는 그런대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무언가 큰 이벤트를 만들어 보려 하거나 노무현 식의 튀는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도 한데 지금까지 무난하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해 왔다.

그런 정장관이 지난 5월 남북당국자회담(차관급회담) 이후 난관에 처해있다. 소식통에 의하면 남북대화의 통로가 뚫리자 정장관은 대단히 흥분한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이제야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에 들떠 있었던 것인데, 정장관도 감정을 가진 인간이니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북한에 비료를 주고 그 대가로 장관급회담을 샀다”는 비난이 있지만, 이 또한 인도적 지원의 대의(大義)를 고려해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복병’이 나타났다. 북한이 미국의 스텔스기 훈련, 대북강경발언 등을 빌미로 6.15 민족대축전 방북단의 규모를 축소해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북한의 이런 요구는 반미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상투적인 술책으로, 이제는 삼척동자도 그 속셈을 알고 있다. 대북전문가들은 쉽게 할 수 있는 예측이었고, 별로 놀랍지도 않은 요구였다.

北의 방북규모 축소 요청, 정동영 장관의 시험대

이제 우리는 정장관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정장관이 이 문제에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조언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하나의 ‘시험대’로써 흥미롭게 지켜보고 싶다. 정장관 역시 작금의 상황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북한이 만들어낸 장난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정장관이 북한의 요구대로 대표단을 축소해 방북할 수도 있다. 그런 ‘결과’를 놓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결과 속에 ‘과정’이 드러날 것이며, 국민은 그것을 지켜볼 것이다.

정장관의 정치경력은 올해로 10년 째다. 정장관이 기자나 앵커로서는 베테랑이었을 지 모르나 북한문제에는 이제 초보자이다. 지난 1년 동안 통일부장관과 NSC 의장을 맡아 적잖이 보고 배웠을 테지만, 북한정권을 상대하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한 발 물러서면 2보 후퇴를 요구하고, 2보 후퇴하면 열 걸음 물러설 것이 요구하는 것이 지금의 북한정권이다. 물러 설 때는 물러서야겠지만 때로는 ‘나를 함부로 건들면 다친다’는 듯 호랑이 같이 나설 때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인지 아닌지는 정장관이 판단할 몫이다.

정장관의 이번 결정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능력’을 완전히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북한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될 다음 대선에서, 그가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을 어떻게 헤쳐가고 얼마나 결단력 있는 사람인지, TV에서 반듯한 외모로만 보던 그의 진면목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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