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김정일 면담, 3년전 상황과 유사

6.15 통일대축전에 정부 대표단 단장으로 참석한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이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전격 면담한 것은 3년여 전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통일 특보의 행보를 떠올리게 한다.

임 전 특보가 2002년 4월3일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특사로서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면담, 분위기 반전을 이끌어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상황부터 유사하다.

2001년 조지 부시 미 행정부 출범후 북미관계가 냉각됐고 이듬 해인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압박을 본격화했으며 핵사찰 등에 따른 북미 대립으로 대화가 단절됐고 남북관계도 함께 냉각됐었다.

이번에도 작년 6월 제3차 6자회담 이후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1년 가까이 지연됐고 북한이 핵위기의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핵실험 준비설까지 제기돼 6월 위기설이 거론되고 있다.

위기 돌파 방법도 비슷하다.

두번 모두 남측은 특사를 파견했고 북측은 김 위원장의 전격 면담으로 화답한 것이다. 당시 임 전 특보, 이번에 정 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난 것은 남북 정상간의 일종의 간접대화라고 할 수 있다. 각각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메시지를 소지했을 것이고 그 것을 바탕으로 대화가 이뤄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 준비 과정도 주목해 볼 만하다.

‘악의 축’ 발언으로 분위기가 경색되자 김 전 대통령은 문제의 발언이 있은 지 한달 후인 2002년 2월 서울을 방문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에 대한 공격의사가 없다는 다짐을 받아냈으며 이를 바탕으로 3월에 북미간 뉴욕접촉이 열렸었다.

이를 통해 북한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면서 임 전 특보의 방북이 성사됐음을 추론해볼 수 있다.

이번에도 북한의 2.10 핵무기 보유선언과 3.31 핵군축회담 제의 이후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북핵문제가 악화일로로 치달았으나 지난 달 13일과 이달 6일 두차례의 뉴욕접촉이 이뤄졌고, 지난 10일(워싱턴 현지시간)에는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고 궁극적으로 북미수교를 의미하는 ‘보다 정상적인 관계’(more normal relations)까지 갈 수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임 전 특보와 정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은 일단 한반도 상공에 뒤덮었던 먹구름을 제거했다는 점에서도 동일해 보인다.

당시 임 전 특보는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과 동해선 건설,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및 경제협력추진위 개최 등을 합의하면서 막혔던 남북관계를 뚫었다. 2개월후 우발적인 서해교전이라는 악재가 발생했으나 그 또한 어렵지 않게 극복했다.

북한은 또 임 전 특보의 방북 이후 일본과의 관계도 눈에 띄게 개선시켜나갔다.

특히 2002년 9월17일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북일수교 교섭이 본격 진행됐다.

그러나 이러한 순풍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그 해 10월 방북한 뒤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면서 점차 역풍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정 장관의 면담 결과를 담은 보따리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김 위원장을 만났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적지 않은 성과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미정상회담이후 정부가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냈고 사실상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문한 정 장관을 만난 것은 그에 대한 화답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일단 정 장관을 매개로 한 남북 정상간의 간접 대화는 암운이 드리워가는 한반도 정세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6자회담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핵을 포기하더라도 국교정상화, 안전보장, 경제지원을 얻어내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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