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가시화되는 `북핵 로드맵’ 논의

‘9.19 북핵 공동성명’ 이후 그 이행계획(로드맵) 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들이 점차 구체성을 띠어 가고 있는 양상이다.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기는 하지만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의 포기’를 약속하면서 함께 명시된 미국,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추진, 관련국들과의 경제협력 등의 상응 조치가 시동을 걸 태세를 갖춰가고 있는 것이다.

우선 ‘가짜유골’ 사건으로 작년 11월 이후 중단됐던 북일 수교교섭이 조만간 재개될 공산이 커 보인다.

양국은 13∼19일 2단계 제4차 6자회담 기간에 이례적으로 공식.비공식을 포함해 5차례 협의를 갖고 정부간 협의를 다시 시작하기로 합의를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총선 압승으로 지지기반을 확고하게 다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북일 수교교섭과 함께 납치문제 해결을 뜻을 강하게 비치고 있고, 대일 경제적 이익을 저울질하고 있는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9.19 공동성명’ 이후 양국관계 개선작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앞으로 한두 달 사이 북러, 북중간 정상회담도 예상 가능한 이벤트이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외무차관은 8일 인테르팍스 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러시아를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으며 그도 적당한 시기에 초청을 실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한 바 있다.

또 공동성명 채택으로 입지를 넓힌 중국도 이제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방북을 타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 시기는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하기에 앞서서 10월말이나 11월초가 될 공산이 크다.

후 주석이 방북한다면 중국으로선 ‘깨지기 쉬우면서도 미묘한 균형을 취하고 있는’ 공동성명의 핵심인 북한의 모든 핵포기 약속을 다짐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북한으로서도 공동성명에 대한 담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의 발전 방향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동안 북핵 해결을 전제로 포괄적 경협 계획을 검토해왔던 정부는 공동성명이 채택된 만큼 이제는 그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 구체적인 정책 입안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포괄적 경협계획은 단순한 경제협력이 아닌 한반도 평화정착의 안전판이 돼야 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현재 남북간 경협 대화채널인 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농업협력위원회 등을 통해 종전 경협을 확대 발전시켜 나가되, 포괄적 경협방안은 중장기적인 정책으로 준비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정부는 이와 동시에 11월 초로 예정된 제5차 6자회담에서 진행될 이행방안 협의에서 성과를 도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사전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음 달부터 본격화될, 5차회담 준비를 위한 양자, 다자 협의에서 창의적인 안을 제시해 이행계획 사전협의를 효과적으로 이끌고, 특히 북일 수교교섭도 측면지원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13∼16일 평양에서 열린 제16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수교 교섭을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권호웅 북측 단장을 통해 최고위층에 전달했고, 이 같은 액션이 2단계회담에서 긴밀한 북일협의의 단초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북핵포기 수순, 관계정상화, 남북경협 확대 주목

걱정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경수로 제공 시점과 관련한 북미간의 치열한 기세싸움이 바로 그 것이다.

북한은 ‘선(先) 경수로 제공 또는 적어도 핵폐기와 동시 제공’을 요구하는 반면, 미국은 ‘모든 핵폐기후 경수로 논의’라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은 국내외의 우려와는 달리 비교적 차분하다.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이를 두고 21일 KBS 1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에 출연해 “이행계획 협상이 장외에서 사전에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경수로 공방의 최대 쟁점인 제공과 관련한 ‘적절한 시점’에 대해 송 차관보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NPT에 가입하고 IAEA 안전조치를 이행하면 그런 과정에서 경수로 제공 절차를 개시할 수 있으며 이 때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절차와 북한이 해야 하는 핵폐기 과정을 잘 조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미를 포함해 관련국간에 기세싸움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우여곡절을 겪은 뒤 일정하게 접점이 찾아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낙관이 배어있는 듯 하다.

더 험난한 과정은 북한의 핵포기에 대한 사찰과 검증에 대한 이행계획 협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폐기 검증방법과 관련, 작년 6월의 3차 6자회담에서 북한은 6자회담 참가국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국제사찰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언제든지 어디든지’ 의심지역에 대한 핵사찰이 가능토록 북한의 NPT(핵무기비확산조약) 추가의정서 가입을 전제로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의한 국제사찰을 요구한 바 있어 본격적인 이행계획 협상에 들어가면 이 공방이 재연될 공산이 적지 않다.

핵폐기 범위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공동성명에 명시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의 범위와 관련해 북미가 다른 해석을 내놓을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장관은 “경수로 문제와 핵폐기 검증.사찰 등의 이행계획이라는 하드웨어는 관계정상화라는 소프트웨어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그 같은 시도를 통해 미국이 북한에게 신뢰를 준다면 수월하게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어 “관계정상화 시도로 우선 미측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또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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