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적 통일, 北 정치·경제적 혼란에 빠뜨려

점진적 통일에서 설정하고 있는 남북한 합의통일도 불가능하다. 합의통일이 실현되려면 남북한 정부의 일방이나 쌍방이 주권의 전부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민주주의를 수용할 가능성이 없는 조건에서 한국정부가 민주주의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합의통일을 추진할 가능성도 없다. 또 권력의 속성상 북한정권이 주권의 전부나 일부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북한정권이 붕괴되면 점진적 통일은 더 어려워진다. 북한정권 붕괴 이후 북한 주민들은 동독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한 주도의 즉각적 통일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동·서독의 경우를 보자. 동·서독의 정치 지도자들과 주요 정당 심지어 민주개혁 운동을 주도한 동독의 시민운동 세력들까지 조약공동체와 국가연합을 통한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추진했다. 그러나 동독주민들은 서독의 경제적 풍요를 나누고 싶은 열망으로 조기통일을 요구했고 그 결과 독일통일이 실현되었다.

북한 주민들은 동독 주민들과 같이 조기통일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주민들은 북한정권 붕괴 이후 경제적 전환과 개혁 과정에서 실업과 경제침체 등으로 인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개혁의 고통은 남한의 경제적 풍요를 공유하길 원하는 북한 주민들의 통일 열망을 폭발시킬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를 원하는 북한 주민들의 조기통일 요구를 막을 방법이 거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 붕괴 시 남한 중심의 흡수통일 외에는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통일 이후 경제통합에 관한 연구도 남북한 경제의 분리운영이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시장경제의 정상적 작동을 왜곡함으로써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고 지적하면서 즉각적 통합을 권고한다. 즉각적 통일의 반대 근거 중 하나인 통일비용은 너무 과도하게 계산되었고, 통일은 비용보다 더 큰 편익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또 남북한 인구이동은 지역 간 소득격차를 완화할 수 있고, 도산단계에 있는 남한의 한계 기업들에게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통화통합은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겠지만 북한 지역의 경제활동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경화를 제공함으로써 후속적인 투자유치 및 기업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점진적 통일은 북한체제를 정치적·경제적 혼란에 빠뜨릴 위험이 높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즉각적으로 남북한의 정치·경제통합을 추진하고 강력한 개혁과 경제부흥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통일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독일통일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과도한 통일비용과 남북한의 이질성 문제를 완화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하젤로프 독일 작센안할트주 총리는 독일통일 2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기조연설에서 동독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남북한의 즉각적 통일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에 와 보니 한국인들이 ‘통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이 느껴졌다. 부국 독일이라고 해서 혼자 통일을 이룬 게 아니다. 통일 이후 주변국에서 수십억 유로를 지원받았다. 한국도 그런 행운이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중략) “현재 동독은 서독 경제의 80%를 따라잡았다”(중략) “자본주의·민영화 개혁으로 실업률이 20%까지 올라갔지만, 꾸준히 재교육과 고용을 연계한 실업보험을 실시했다. 도로·공항 등 낙후한 인프라에도 막대한 재원을 투자해 새로 정비했다. 그 결과 전국 평균의 60%에 그쳤던 작센안할트의 노동생산성은 현재 기계산업 등 분야에서 옛 서독지역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실업률도 한 자리대로 떨어졌다. 최근에는 동독 출신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현상도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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