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보고는 ‘양키왔다’고 소리쳐요”

(조선일보 2006-06-26)
“탈북 청소년들이 미국인인 나를 처음 보더니 ‘양키 왔다’고 소리치더군요.(웃음) 필요 이상으로 말이 없고, 폐쇄적이고, 무슨 이유에선지 죄책감마저 가지고 있는 그 아이들 앞에서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정신적 상처를 예술활동으로 치료하는 전문가인 미국 컬럼비아대 로빈 스노(Robin Snow·36) 교수가 한국을 찾아와 탈북(脫北) 청소년들의 다친 마음들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지난 24일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여명학교’ 학생 40여명을 만나본 스노 교수는 “이 아이들은 벼랑 끝에서 최후의 선택을 해본 아이들”이라며 “게다가 한국에 잘 적응하지 못해 좌절과 불안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스노 교수는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 내의 아동·청소년 예술치료 센터인 ‘케어링 앳 컬럼비아(Caring at Columbia)’에서 연구와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전문분야인 ‘예술치료’(art therapy)란 청소년들의 정신적 상처를 미술·음악·연극·사진·무용 등 예술활동으로 예방·치료하는 것이다. 의료진과 예술가, 심리학자 등이 손잡고 뉴욕 할렘의 이민자 자녀 등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준 ‘케어링 앳 컬럼비아’의 프로그램은 1988년 이래 미국 내 예술치료의 모범적 사례로 손꼽힌다. 이 프로그램은 SK 텔레콤 사회공헌팀의 공조로 올해 6~11월 중 국내 탈북 청소년을 비롯한 소외계층 청소년 120명에게 처음 적용된다.

스노 교수는 “미국에도 이민자 문제가 많지만, 한국 내 탈북 청소년 문제는 더 심각한 것 같다”며 “특히 고통스러웠던 탈북 과정은 성폭행이나 심한 정신적 학대를 당한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증오심까지 낳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 청소년들이 앞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고, 손에 물감을 묻혀 자화상을 그리고, 연극 배역에 빠져들면서 자아를 발견하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한국에 대한 신뢰와 소속감을 높이기 위한 작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1월에는 탈북청소년들의 연주회와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죠.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예술치료가 더 빠른 성과를 낳기도 합니다.”

스노 교수는 예술치료 전문가 이전에 예술가 지망생이었다. 학부 땐 미술(조소)을 하다 예술치료로 전공을 바꿨다. 천천히, 부드럽게 말을 이어나가는 그는 “혼자 작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외로웠는데, 작품을 매개로 대화하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 좋다”고 했다.

그의 가족은 ‘예술치료 가족’이다. 어머니는 음악치료, 아버지는 연극치료 전문가로 대학강단과 현장에서 뛰고 있다. “집에 악기와 미술품, 연극 소품들이 줄줄이 쌓여 있다. 예술치료 전문가끼리 모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느냐”며 깔깔 웃었다. 그는 “앞으로 모든 예술분야를 통합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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