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北기관원 김종률 씨 “한국망명 거부당해”

오스트리아에서 20년 간 북한의 군수담당 정보기관으로 활동했던 김종률(75) 씨는 한국으로 망명하려 했으나 한국 측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밝혔다.


은신 16년 만에 최근 자서전 출간을 계기로 모습을 드러낸 김 씨는 1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2006년 한국 망명까지 생각하고 주(駐)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 관계자와 접촉했으나 잘 안 됐다”면서 “대사관 관계자가 거절했으니, 한국 정부가 거절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뿔 달린 공산당이라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대해 주오스트리아 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는 “당시 김 씨가 대사관 측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일이 진행되던 중 김 씨가 갑자기 연락을 끊고 다시 잠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에도 대화가 순조롭지는 않았던 것같다”면서 “이번 기자회견 후에는 전혀 접촉이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잠적 전까지 빈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20년 간 활동하며 북한에 필요한 군수ㆍ산업용품과 건축자재 등을 구입해 북한으로 보냈던 김 씨는 지난 4일 빈에서 ‘독재자에게 봉사하며(Im Dienst des Diktators)’라는 제목의 독일어판 자서전을 출간, 김일성 주석의 사생활을 폭로한 뒤 오스트리아에 망명을 신청했다.


김 씨는 “사람이 70세가 되면 죽음을 생각하는 법”이라면서 “이렇게 그냥 죽어야 하나 자문(自問)한 끝에 마지막 한마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책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북한군 대좌로 호위사령부 제1국(행사조직국) 경비운수부 기술담당 부부장이었으나 오스트리아에서는 조선기계수출입상사 부사장 등의 직함으로 활동했다”면서 “금속탐지기, 독가스탐지기 등 신변보호 장비와 창문, 벽지, 타일까지 김일성 주석의 별장에 들어갈 물건들을 모두 실어 보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1994년 잠적한 이후 “빈 외곽에 있는 조그만 농촌 마을의 지하 방에서 5천619일 동안 매일 같은 침대에 누웠다”며 그간의 어려웠던 생활을 소개했다.


잠적 수개월 전부터 모아 놓았던 돈으로 생활했으나 곤궁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지금까지 계산해보니 담뱃값에도 못 미치는 3.5유로(한화 약 5천400원)가 평균 하루 생활비였다”면서 “지금도 돈이 없다”고 말했다.


은신 기간에 집도 오스트리아인의 이름으로 얻는 등 단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고 수염과 안경으로 변장하기도 했다.


김 씨는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당장은 어렵다”면서 “0.1%, 크게 잡아 1만명도 되지 않는 김정일 주변의 무리가 독재정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북한이 길어야 5년 정도 지탱할 것으로 판단해 죽음으로 위장한 뒤 잠적했었다. 가족들도 곧 다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김 씨는 “16년 간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면서 “처와 아들, 딸이 있는데 아들은 지금 45세, 딸은 40세쯤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심경에 대해 “북한 공산당에게 붙잡힐까 봐 불안하다”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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