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납북 미귀환 485명‥대부분 납북어부

금강산에서 열리고 있는 제 15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납북어부 김홍균(62)씨가 9일 남측 어머니 이동덕(88)씨와 39년만의 ‘감격 만남’을 하면서 남한 주민 납북실태와 규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의 남한 주민 납북은 1970∼198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나 북한은 아직도 납북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지난해 2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 7차 적십자회담에서 남북이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시기에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확인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했으나 일반 이산가족 속에 2∼3명씩 포함해 상봉시키는데 그치고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전쟁 후) 납북자는 모두 3천790명에 달하며, 이 중 3천305명이 귀환했고 미귀환자는 485명인 것으로 통일부는 집계하고 있다.

미귀환 납북자의 대부분은 어선과 함께 피랍된 어부들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남한에 살고 있는 미귀환자의 가족은 2천∼3천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근 국가정보원은 1973년 납북된 대용호 선원 일부를 추가해 미귀환자를 489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전후 납북자 가운데 탈북자들의 진술 등을 통해 생사가 확인된 경우는 103명으로 집계됐으며, 1968년 납북됐다가 이날 모자(母子)상봉을 하게 된 대성호 선원 김씨도 이들 중 한 명이다.

지난해 6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 14차 이산가족 상봉에서는 1978년 고교 1년 재학시절 전북 군산시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실종된 ‘납북 고교생’ 김영남(46)씨가 어머니 최계월(83)씨를 28년 만에 만나 주목을 받기도 했다.

6.25전쟁 중 납북자는 8만여명인 것으로 당시 통계연감이 기록하고 있으나 1956년 6월15일부터 8월15일까지의 대한적십자사가 벌인 조사 결과는 7천34명으로 나와 커다란 격차를 보이는 등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쟁 중 인민군에 붙잡힌 국군포로의 경우는 당시 총 4만1천971명 가운데 포로송환 협상을 통해 8천726명이 귀환했고 1만3천836명이 전사로 처리됐다.

탈북자 등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국군포로는 모두 1천734명이며 현재 북한 생존자는 548명, 사망자는 885명, 행방불명자는 301명 등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피랍탈북인권연대의 도희윤 대표는 “전후 납북자 가운데 어민이 440여 명으로 93%에 이른다”면서 “북한은 납북자 문제 자체를 부인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최근에는 ‘상봉’으로 납북문제를 덮으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이런 북한의 의도에 편승해서도 안되며 생사확인과 상봉은 물론 송환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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