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의 北中관계 다시 발견한 후견국

북한은 살기 위해 국제사회 편입과 내부적인 개혁을 선택했지만 미국의 강경한대북정책 등 국제적 환경의 변화는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에 매달리게 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것은 1999년 9월 대북화해를 축으로 하는 한.미.일의 접근법이 담긴 ’페리 보고서’가 나오면서부터.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같은 해 북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특사 방미,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잇달아 이뤄졌고 북한은 유럽국가들과도 적극적인 수교에 나섰다.

또 2002년에는 가격과 임금의 현실화를 골자로 하는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취하면서 시장경제원칙을 부분적으로 수용해 나갔다.

왜 북한은 변화를 추구했을까.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붕괴한 상황에서 침체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던 경제가 일어설 돌파구를 찾지 못했고 이로인해 잘 짜여진 체제를 특징으로 하는 북한사회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잇단 자연재해가 들이닥치면서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1994년 -2.1%, 1995년 -4.1%, 1996년 -3.6% 등 계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탈북자도 급증, 1998년 72명에 불과하던 국내 유입 탈북자가 1999년 148명, 2000년 312명, 2001년 583명, 2002년 1천139명 등 빠르게 늘어만 갔다.

1998년 아버지를 이어 명실상부한 북한 최고지도자 자리에 앉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장에서는 변화를 통해 흐트러진 북한사회를 추슬러야만 하는 시급한 과제가 발등에 떨어진 가운데 평화공존을 토대로 하는 한.미.일 3국과의 관계개선을 축으로 하는 ’페리프로세스’를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2001년 부시행정부가 들어서고 워싱턴과 뉴욕을 강타하는 9.11테러가 발발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은 강경일변도로 이어졌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제네바 합의로 마무리된 듯 보였던 북한 핵의 망령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특사의 방북과 함께 되살아났다.

동북아 관련국들이 참여하는 6자회담이 열리고 2005년 ’9.19공동성명’이 채택됐지만 미국의 대북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북핵문제’는 위조지폐, 마약, 인권 등을 포괄하는 ’북한문제’로 폭이 더욱 넓어졌고 미국은 금융제재와 추가적인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의 숨통을 조여가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국제적 고립 속에서 ’페리 프로세스’를 받아들였던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대북압박과 제재 속에서 경제개혁의 지속을 위해 새로운 후견국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은 셈이다.

김 위원장은 2004년 4월과 2005년 10월, 2006년 1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통해 4세대 지도부로 이뤄진 중국의 협력을 끌어냈다. 개혁을 권하는 후 주석의 요구를 남순(南巡) 행보로 화답하면서 중국과의 밀월관계를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발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통한 국가 위상 제고를 위해 한반도 평화가 중요한 중국의 지도부도 ’전략적 관계’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뒤를 받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의 대북투자 등 북.중간의 경제협력은 2003년부터 빠르게 늘어나면서 외부로부터의 공급에 기초한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의 숨통을 틔우고 있다.

작년 북.중간 교역규모는 15억8천만달러로 처음으로 15억달러선을 넘어섰고 2002년 이후 3년 연속 10억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중국 정부는 원유와 식량 등 20억달러 상당의 무상원조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교역 중심의 북중간 경제협력은 광산과 기계공장 등 투자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여기에다 김정일 위원장의 1월 남순 방중 이후 장성택 당 중앙위 부장을 필두로 북한의 경제관료들의 중국 방문이 이어지면서 ’중국 배우기’도 빨라질 전망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재의 대외정세는 이런 바람을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북한 지도부로서는 정치적 난관 타개와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에 초점을 둘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