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북핵실험 진단 `3인3색’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0일 낮 전두환(全斗煥) 김영삼(金泳三.YS)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하며 북한 핵실험 사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전ㆍ현직 대통령의 청와대 회동은 2004년 1월13일 신년 모임 이후 2년반여만의 일이다.

회동에선 특히 퇴임 후에도 정치적 라이벌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YS와 DJ가 노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 해 이목을 끌었다. 2004년 1월 당시 모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참석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불참했었다.

노 대통령이 북한 핵실험 사태에 따른 후속 조치 마련을 위해 전직 국가원수들로부터 국가운영의 경험과 고견을 듣는 자리였지만, 대북 강경론자인 YS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YS는 우선 북한 핵실험을 “6.25 이후 우리나라에서 겪은 가장 큰 일”이라고 규정, “나라가 이 지경이 돼 정말 국민이 불쌍하고, 분해 잠을 자지 못했다”며 햇볕정책의 공식 폐기를 선언하고 금강산.개성공단 사업을 즉각 중단시키라고 촉구했다.

YS는 이어 “노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엄청난 사안”이라며 DJ와 노 대통령의 대국민 공개사죄를 요구하면서 두 정권의 대북 포용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북핵은 두 정권이 8년7개월 동안 4조5천800억원의 돈을 북한에 퍼줘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북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감싸기만 한 노 대통령은 북한의 변호사인가”라며 핵무기가 자위수단이란 북한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했던 노 대통령의 북핵 관련 발언을 문제삼기도 했다.

YS는 나아가 “전쟁을 각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며 ‘사즉생’의 자세를 주문한 뒤 “공산주의자와 중국을 믿지 말라”며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정상회담에서 얽힌 비화도 소개했다.

장 주석이 방한 당시 청와대 오찬을 앞두고 북한 얘기만 하자는 데 합의해놓고도, 정작 오찬에선 “안기부에서 북한에 사람 보내고 있지 않느냐”며 거꾸로 북한 동향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해 어이가 없었다는 얘기다. YS는 “그만큼 (중국은) 엉큼하다”며 미국, 일본과 공조가 중요하다고 했다.

YS가 이처럼 바로 면전에 대고 ‘직격탄’을 날렸지만 DJ는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DJ는 대신 발언 기회를 얻자 보수층의 햇볕정책 인과론을 겨냥, “북미관계가 안돼서 (북핵문제가) 진전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고 동교동의 최경환 비서관이 전했다.

DJ는 “금번 북한 핵실험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북핵은) 반드시 해체시켜야 한다”고 전제한 뒤 북미 대화와 유관국들과의 긴밀한 협의를 사태 해법으로 제시했다.

현 상황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전쟁 같은 군사적 징벌과 경제적 제재, 대화를 통한 해결인데, 전쟁은 미국부터가 그럴 여유가 없고, 경제적 제재는 되레 북한의 도발과 경제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제재에 앞장설 필요가 없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DJ가 내놓은 해법의 핵심이었다.

DJ는 이 같은 발언을 사전에 꼼꼼히 준비한듯 자료가 담긴 듯한 두툼한 봉투를 오찬장에 들고 나왔고, 최 비서관을 통해 청와대 오찬에서 한 언급 요지를 보도자료로 내도록 했다.

이는 YS가 오찬 후 상도동 자택으로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을 불러 오찬에서의 대화 내용 등을 거침없이 소개한 것과는 대비됐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비대칭 전력 불균형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전작권 환수 문제도 상황이 악화된 이상 상당기간 유보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군 출신답게 군사적 시각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상황 인식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에게는 “걱정이 많으시겠다”며 위로의 뜻도 전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특별한 언급없이 주로 전직 대통령들의 발언을 경청했고, “상황을 신중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은 북핵 사태 해법을 놓고 인식을 달리했지만, 반기문(潘基文) 외교장관이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데 대해서는 “큰 영예이다”(전두환), “참 잘 된 일”(김영삼)이라고 한 목소리로 축하하는 등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또한 노 대통령이 “만일 한미동맹이 틀어졌거나 주변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겠느냐”라고 말한 데 대해서도 모두 공감을 표시했다고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 큰 복을 만든 것”이라며 노 대통령에게 공을 돌려 눈길을 끌었다. 반면 YS는 기자들에게 문민정부 때 반 장관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사실을 새삼 거론하면서 “대단히 유능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재임 기간에 핵(核) 정책 또는 북한핵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정책을 입안하고 다뤄본 경험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시절 정부의 핵정책과 관련한 중대한 결정을 내렸었다. 전 전 대통령은 취임초 박정희(朴正熙) 정권 말기 악화되었던 대미(對美)관계의 회복에 착수했고, 박 전 대통령 시절의 핵개발 계획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당시 레이건 미 행정부로부터 지지를 얻어 정통성 부재를 만회하기 위해 핵개발 포기 결정을 내렸다.

이후 1991년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남북한 공동으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채택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후 얼마 되지 않아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계기로 초래된 1차북핵위기를 맞았고, 이후 대북정책이 ‘냉.온탕’을 왔다갔다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1994년 여름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 원자로 시설에 대한 정밀폭격을 검토하자 반대입장을 폈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김대중 전대통령도 퇴임을 반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측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함으로써 비롯된 제2차 북핵위기를 목도하면서 임기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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