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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열게 된 이유는.
북한인권 현실, 탈북자들의 실태, 북한 주민들이 왜 굶어 죽었는지를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식량난의 원인을 자연재해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북한 돕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있다. 이것을 바꾸어야 한다. 단순히 자연재해가 아니고 김정일 때문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이처럼 한 번 보는 것이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다른 전시 계획은.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다. 이번 전시회를 관람한 몇몇 청년들이 의기투합해서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전시회를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기회가 닿으면 어디든지 전시하겠다.
-미국 전시 계획은.
4월 18∼20일까지 3일 동안 워싱턴 D.C에 있는 국회의사당에서 전시회를 갖기로 했다. 지난 여의도 국회 전시회에서는 길수 그림만 전시했는데, 이번에는 여러 다양한 편지와 사진 자료, 탈북자들이 쓴 일기를 직접 가지고 가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추모제도 진행할 생각이다.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3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는데도 그들의 영혼이 어느곳에서도 제대로 위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억울한 영혼이라도 달래주고 기억해주고 싶다.
-미국 전시회를 갖게 된 배경은.
<북한국제인권연대> 수전 솔티 대표가 많은 도움을 줬다. 공동대표인 남신우 선생도 교포사회에 이번 전시회 유치을 호소했다. 미국 국회 전시가 끝나면 교포들이 있는 곳에 가서 순회전시를 가질 예정이다. 4월에는 워싱턴 D.C, 5월은 LA가 계획돼있다.
-전시회를 본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방명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충격적인 현실에 매우 분노하고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부터 주부, 나이 드신 분들까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분들은 북한 주민 수백만이 굶어 죽은 원인이 김정일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런 내용도 미국 조야(朝野)에 널리 알리고 싶다.
지난 십 년 동안 관련자료 4백여 점 모아
▲ 문국한 대표 |
한국 정부와 일반 국민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미국에서는 정부나 국민 모두가 친북반미(親北反美) 성향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국민들의 이런 반응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
-그림과 사진은 총 몇 점을 보관하고 있는가.
그림과 사진, 자료, 실물을 포함해 4백여 점 정도 된다. 전체를 전시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료를 계속 바꾸어서 전시하고 있다.
-이런 그림과 사진을 어떻게 다 수집했나.
중국에서 10년 동안 모았다. 탈북자들을 통해서도 모았다. 길수 일가는 화가 가족이다.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이 그린 북한 현실에 대한 그림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기증도 해주었다.
-처음 탈북자,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94년 문구 사업을 하기 위해 중국을 처음 방문했다. 그 당시는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갈 때다. 중국을 왕래하다가 96년에 처음 탈북자를 만났다. 옌지에서 한 청년을 만나 그를 보호하면서 3년 정도 함께 지냈다. 당시에는 사업도 하면서 그 청년을 도왔다.
옌지(延吉)에서 만난 탈북 청년이 내 인생 바꿔
그러다 보니 사업은 뒷전이 되고 그 청년을 한국에 데려오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3년이나 함께 지내니 자식과 다름없었다. 98년 여권을 위조해 한국으로 데려왔다. 그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다시는 탈북자 돕는 일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길수 가족을 만났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길수 가족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들여 보내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었는데.
많이 힘들었다. 한 명을 데려오는 데도 그 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는데 16명을 도대체 어떤 수로 데려올 수 있었겠는가? 많은 고민을 했다. 어린 아이부터 60대까지 16명의 생명은 내게 너무 큰 무게로 다가왔다. 그 당시에는 한국에 이 사실을 알려도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기자들을 만나도 나를 국정원 사람 취급했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반북(反北) 분위기 조성을 위해 유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외신들과 접촉하면서 그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탈북자 공관진입을 주도했는데.
길수 가족 사건 이후 NGO단체들이 모여서 탈북자들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릴 필요성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국제사회에 크게 알리려면 탈북자들을 모아서 행동에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페인 대사관 진입을 추진했다. 일본 영사관 진입도 시도한 적이 있다.
-지금은 북한인권 현실과 탈북자들의 실태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는데.
재작년부터 중국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지금은 이런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무지가 죄를 낳고 있다
▲ 문국한 대표 |
-북한인권문제나 탈북자문제에 대해 정부가 무관심한데
정부가 무지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무지가 죄를 낳는다. 어떤 분이 방명록에 ‘무지가 죄악이다’라고 썼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 현실에 대해 안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무지하다.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알면 혼란이 생기겠지만, 북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알려주고 탈북자들을 진솔하게 만나면 정부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그들도 돌아설 것이다. 무지만 일깨워주면 달라진다. 단지 우리가 더 열심히 못하는 것이 한이다.
-이번 미국 전시회에서 공개처형 동영상도 전시되는가.
당연하다. 우리는 동영상 이외에도 길수가 그린 그림, 일기 등의 자료를 가지고 있다. 나는 길수가 그린 그림으로만 봐서 공개처형에 대해 반신반의 했다. 그런데 이번 공개처형 동영상을 보니까 길수의 그림과 너무 똑같았다. 재판과정과 현장이 모두 일치한다. 아이들은 당시 공개처형 장면을 그려 놓고도 상상으로 그렸다고 말했는데, 사실 아이들은 본 것이다. 그런데 왜 나에게는 못봤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길수 형제들은 공개처형 현장을 정확히 그렸다. 그런 것을 증거자료로 같이 전시할 계획이다.
직접 북한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
-지금도 북한에 계속 지원하고 있는가.
오랫동안 해온 일이다. 북한 당국에 지원하는 것은 북한 정권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다. 앞으로 계속 하겠다.
-직접 북한을 방문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금강산에 간 것인가?
(웃음) 아니다. 금강산 관광을 갈 돈도 시간도 없다. 당시에 탈북자들 말만 듣고 믿을 수가 없어서 직접 북한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여러 루트가 있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탈북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활동을 언제까지 계속할 생각인가.
북한이 해방되는 그날까지 하겠다. 알고 있는데 침묵할 수가 있는가? 한국에서만 활동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될 문제다.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쓰나미보다 열 배, 백 배의 참상이다. 이것을 어떻게 한국 국민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