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통지서 받고 40년을 제사 지냈는데”

“형님이 징집되고 10년 후쯤 전사통지서가 날아왔어요. 그래서 죽은 줄 알고 40년을 제사까지 지냈는데..”
이달 26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둘째 형을 만나게 된 김창만(70.경기 안산)씨는 “어머니께서 형님이 돌아가신 줄만 알고 마음 아파하며 돌아가신 게 안타깝다”고 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 후 서울시 천호동에 살던 김씨가 둘째 형 창옥씨와 헤어진 것은 1950년 6.25 전쟁이 터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김씨는 “전쟁이 일어나고 한두 달 후에 20대였던 첫째 형과 둘째 형이 징집됐다”며 “이후 소식이 끊겼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길 고대하던 김씨 가족의 바람이 무색하게 10년이 지난 어느 날 국방부의 전사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국방부는 “두 형제가 모두 전사했다”고 가족에게 통보했고 김씨 가족은 40여년간 전사통지서에 적힌 날에 두 형제의 제사를 지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떴고 20여년 전에 어머니도 뒤를 따랐다.

그러던 2007년 이번엔 통일부에서 연락이 왔다. 죽은 줄 알았던 둘째 형 창옥씨가 살아 있다는 것.

통일부에서 김씨에게 건넨 창옥씨의 사진과 문건에는 부모형제의 이름과 일본에서 살았던 주소까지 정확히 적혀 있었다.

김씨는 “이름과 주소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사진만 보니 대번에 알겠더라”며 “표정이 잔뜩 굳어 있긴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형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곧 형님을 다시 만날 줄 알았던 김씨 가족은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번엔 남북관계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기약 없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59년 만에 형님을 만나게 된 김씨는 “결혼은 했는지, 조카는 있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참 물어볼 게 많다”며 조급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살아 있는 아들이 죽은 줄 알고 제사를 지내며 마음 아파하다 돌아가셨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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