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자 유골발굴 현장…”삽내리고 호미들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유해를 발굴해 한지로 포장하고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6.25 당시 최대 격전지인 동시에 사라질 뻔한 대한민국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낙동강 전투. 60년 전 남하하는 북한군과 이를 막으려는 국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경북 공위군 노행리의 한 야산에는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유골이다! 삽 내리고, 호미들어!”


지난 16일 유골을 수습하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형심 팀장(상사)의 명령에, 일제히 삽을 내리고 정교한 호미질에 들어갔다.


황토와 나무뿌리가 섞여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유골을 팀원들은 능숙한 솜씨로 분리해 하나하나 한지로 포장한 뒤 전사자의 명복을 비는 제례의식이 치러졌다.


제례의식이 끝난 유골함은 전사자를 보내는 부대 의식과 마찬가지로 장병들의 도열속에 봉안소로 옮겨졌다.


이 팀장은 “전투 중이라 장례도 치르지 못한채 죽음을 맞은 전사자들의 넋을 달래는 일이 중요하다”며 “모든 작전 절차가 장례 절차에 맞춰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유골이 장병들의 도열 속에 봉안소로 옮겨지고 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2007년 창설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전국에 8개 팀 1000여 명(지원병력포함)의 단원들이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해를 발굴 중이다.


6.25 당시 격전지가 대부분 산악 고지인 탓에 단원들은 주먹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매일 험한 산을 오가면서도 숙련된 솜씨로 현재까지 4900여 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2000년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는 4천130구다. 초기에는 매년 100~300구 정도만 발굴됐지만 최근에는 연간 1천여구로 증가했다.


한편 유해를 발굴한 이후에도 신원 확인이 문제로 나서고 있다. 발굴한 유해는 이미 60년 가까이 지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소지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56구에 불과하다.


감식단은 6.25 전사자 유가족의 혈액과 발굴 유해의 DNA를 비교해 신원을 확인하는 방식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신원 확인을 위한 채혈에 참여한 유가족은 1만2천여 명으로 감식단은 2014년까지 총 2만 명의 유가족으로부터 채혈을 받을 계획이다.


감식단은 전국에 있는 보건소를 방문하면 언제든 6.25 전사자 유가족 채혈이 가능하고 무료 건강검진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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