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계층’ 향해가는 北민심…”국가가 싫다”

1990년대 중반 한미연합사의 국제관계 담당관으로 근무했던 로버트 콜린스는 ‘북한붕괴 7단계 시나리오’를 작성한 바 있다.


그가 작성한 7단계는 자본과 자원의 고갈-> 국가 체제 불안정-> 관리들의 광범위한 부패와 중앙정부 통제권 약화-> 반란에 대한 김정일(김정은) 정권의 탄압-> 중앙 정부에 대한 저항-> 체제 균열-> 새로운 국가 지도체제의 형성이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정일 정권이 지배하는 북한은 이미 국가로써 존립하기 어려운 과정으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안 명예교수는 “북한 정권은 단순재생산도 불가능해 주민들에게 존재의 정당성을 잃었다”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볼 때 국가 붕괴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내부 소요나 외부 개입이 없는 조건에서는 붕괴가 임박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데일리NK 특별취재팀이 북-중 국경지대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의 증언 곳곳에서도 체제 위기의 시그널이 감지됐다. 만성적인 경제난으로 반(反)사회적 현상이 만연하고 행정시스템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또한 주민들은 정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반응이다. 체제 불만이 일부 선각자와 지식인에서 저소득 계층으로, 다시 중간계층과 우대계층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反사회적 현상 ‘부정부패, 마약, 매춘’ 만연=부정부패는 당과 군, 행정 간부 뿐만 아니라 조그만 이권이라도 가진 조직에게도 생존방식으로 뿌리 내렸다. 공직자들은 자금과 물자 부족을 뇌물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는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고, 돈 없이는 되는 일도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고 말한다.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에서 만난 대북 무역상 박영민 씨는 북한에 투자를 위해 방문하면서도 곳곳에서 뒷돈을 지불해야 했다고 말한다. 박 씨는 “북한 세관에서는 충전이 안 된 전자제품은 ‘우리 전기를 낭비한다’면서 압수한다. 정치심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중국돈 200위안을 내라고 하는데, 그 뒤에도 갖은 꼬투리를 잡아 또 돈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초청한 북한 사람도 ‘복잡하죠’라는 말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마약도 만연하고 있다. 남포조선소 간부출신 여성 김선화 씨는 “아파트에 80세대가 살면 10세대가 그걸 피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면서 “(화폐개혁 이후) 돈을 벌다가 못 버는 사람들이 이걸 많이 피운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나도 아들놈이 할까 걱정”이라는 걱정을 털어놨다.


김 씨에 따르면 마약 문제가 심각해지자 당국 차원에서 ‘빙두특공대’까지 조직됐다.


또한 북한 내에서는 마약이 치료제 대신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평성에서 장사를 하는 40대 여성 김은혜 씨는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돈 많은 사람들은 다 쓴다. 암에도 효과가 있고, 신경통, 염증에도 효과를 본다고 한다”며 “치료용으로 쓴다는데 누가 단속할 수 있겠느냐”며 북한 내 폭넓게 퍼진 마약 사용 실태를 증언했다.


매춘 또한 북한 당국이 ‘여대생 매춘’을 단속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생활 속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매춘이 손 쉬운 돈벌이 수단이 되면서 과거와 같은 도덕적 수치심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행정능력 저하에 따른 불신 확산=2009년 화폐개혁은 북한의 행정능력이 바닥까지 떨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북한이 당초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의 성과로 앞세우려 했던 평양 10만호 건설 사업도 자재부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화페개혁과 10만호 건설의 실패로 후계자 김정은에 대한 리더십이 의심받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김은혜 씨는 2012년 강성대국 진입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에 대해 “겉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안 믿는다”며 “아무것도 없는 갑자기 2012년에 강성대국이 되겠는가. 중국에서 뭐(투자나 지원) 한다, 남포에서 쌀이 들어온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고 전했다.


공장가동률이 20%에 머물고 배급도 되지 않은 조건에서 국가 정책을 추진하는 행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는 어렵다. 행정시스템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면서 일선 행정의 공정성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주민 교양도 반복된 정책 실패와 외부 정보 유입으로 그 기능을 상실했다. 오직 주민통제기구만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 행정기능의 마비는 북한 당국이 사실상 물리적 공포 이외에는 주민들을 컨트롤 할 수단을 상실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화폐개혁에 이은 평양 10만호 건설의 실패는 북한 당국에 또 한번의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중간계층이 적대계층으로 진화=신의주 거주 40대 밀수업자는 자신이 민간무력(교도대 등)의 간부급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폐개혁 이전에는 국가에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가 하는 짓이 싫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국가가 화폐개혁으로 무지막지하게 주민들 재산을 빼앗아 갔다”면서 “피땀으로 번 돈을 가져갔는데 어느 누가 이를 묵인하고 국가에 감사하겠냐”고 불만을 표출했다.


평성에서 장사하는 40대 여성은 “화폐개혁 때문에 장사꾼들이 많이 망했다”면서 “주로 달리기 장사꾼들이 망했다”고 말했다. 달리기 장사는 시장과 시장을 옮겨 다니면서 물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중간 장사꾼들이다. 화폐개혁의 영향으로 보유했던 자본이 휴짓조각이 되고 시장 활동이 위축되면서 장사꾼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여성은 정부에 “항의라도 해야 하는데”라며 갑갑함을 호소했다. 이러한 민심 악화는 북한이 분류하고 있는 3대 계층인 핵심, 동요, 적대(복잡) 계층 가운데 핵심계층의 일부와 동요계층이 북한 정권에 대한 불만세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불안 요소와 북한 정권의 선택=안 명예교수는 북한이 붕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경제체제 붕괴 ▲재정체계와 관료체계 붕괴 ▲통치체계 마비 ▲인프라 스트럭처(사회기반시설) 마비 ▲생산활동의 전면적 위축을 들었다.


북한 붕괴단계를 제시한 로버트 콜린스는 북한 사회의 생산시스템 마비를 첫 번째 위기로 들고 있다. 이것이 관료체계의 마비와 정부 통제력 약화를 불러오고, 이후 북한 주민의 불만이 본격화 되는 과정을 거쳐 체제 균열 단계로 진입한다고 말한다.


콜린스는 북한 북한이 4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일반 시민이 아닌 엘리트 층 내부에서의 붕괴가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안 교수는 “북한 당국이 권력을 통해 주민들에게 살아갈 방도를 제시하지 않게 되면 위기는 가속화 될 수밖에 없다”면서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체제 연명만을 시도하는 한 지배계층의 인민에 대한 정당성은 물론 지배계층 스스로도 존재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환 계간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북한 체제에 불안요소들이 산재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적 리더십은 안정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북한체제의 붕괴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북한 당국에게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김정은 체제가 연착륙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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