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받는 일본인 납북 피해자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48)씨의 방일을 계기로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인 납북 피해자들이 주로 1960∼1970년대 어업 도중 북한으로 끌려갔다면, 일본인 납북 피해자들은 1970∼1980년대에 동해에 접한 니가타(新潟), 후쿠이(福井)현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끌려갔다는 점이 특징이다.


당시 북한은 한국인 납북자 등에게 간첩 교육을 한 뒤 일본인이나 재일동포 행세를 하게 해 남파할 목적으로 일본인들을 끌고 가 일본어 교육 등에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납북자 숫자가 514명에 이르는 반면, 일본인 납북자는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 정부가 인정한 납치 사건은 12건이고, 피해자는 17명에 이른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이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북한은 납치에 관여한 사실을 부인하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9월17일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게 8건, 13명 납치 사실을 인정했고,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52)씨 등 5명을 돌려보냈다.


북한은 8명은 숨졌다고 설명했고, 일부는 유골을 일본에 보내기도 했다.


이때 숨졌다고 설명한 사람이 김현희씨가 이번 방일 기간에 가족을 만난 요코타(橫田) 메구미씨와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북한명 이은혜)씨다.


요코타 메구미씨는 중학교 1학년이던 1977년 11월15일 하교 도중 니가타(新潟)시 자택 부근에서 실종된 뒤 일본 납북자를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북한은 요코타씨가 한국인 납북자인 김영남씨와 결혼해 딸 은경양을 낳았고, 1993년 숨졌다고 설명했지만 이후 1994년에도 요코타씨를 본 적이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후 북한은 행정상 실수라며 요코타씨가 1994년에 숨졌다고 정정했지만 일본은 북한의 설명을 믿을 수 없다며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 납북자 문제는 북한을 핑계로 일본의 재무장을 추진하는 우파가 즐겨 이용하는 소재지만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폭넓게 공감을 받고 있다.


일본 납치피해자가족회 내부적으로는 하스이케 도루(蓮池透.55) 전 부대표가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에 대한) 압력만으로는 안 되고 대화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가 제명당하는 등 내부 갈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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