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조선대 교수, 강경애 연구로 北서 박사학위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계열 조선대학교 문학역사학부 오향숙 교수가 여성작가 강경애(姜敬愛.1906-1944) 연구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11일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8.26)에 따르면 오 교수는 2002년 6월 김일성종합대학 통신박사원생으로 등록한 후 강경애의 생애와 작품을 이론적이고 체계적으로 종합한 ‘강경애 창작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는 지난달 1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곽범기 내각 부총리와 강춘금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서기장이 참석한 가운데 오 교수에게 문학박사 증서와 메달을 수여했다.

김일성종합대학 통신박사원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학위를 수여받는 것은 이번이 10명째이며 특히 총련에서 북한의 여성박사가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조선신보는 전했다.

오 교수는 해방 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가 강경애의 생애와 작품을 20여 년 동안 연구해 왔다.

그는 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후 “기쁨과 함께 20여 년 간 연구의 나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저절로 눈물이 났다”며 “이 동안 어려움도 많았고 연구를 그만두자고 생각한 바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오 교수는 지난해 9월 조선신보에 ‘강경애의 묘비를 찾아서’라는 기행문을 게재, 강경애의 묘가 황해남도 장연에 있으며 그의 묘비에는 유고시 ‘산딸기’가 새겨져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강경애를 “진보적이고 재능있는 여류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황해남도 송화군에서 태어난 강경애는 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7세 때 고향을 떠나 장연으로 갔다. 그후 1924년 평양숭의여학교에 입학했다 퇴학 당해 1929년 중국 간도에 들어가 용정(龍井)일대에서 임시교사 등을 했으며 1931년 고향으로 귀향했으나 이듬해 다시 용정으로 들어가 문학단체 ‘숙향회’ 동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한때 무애 양주동(梁柱東.1903-1977)과 사랑에 빠졌다가 1931년 후일에 노동신문 부주필을 지낸 장하일과 결혼했다. 그러나 신병으로 1939년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다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사망했다.

그녀는 고향을 배경으로 식민지 자본가와 농민, 노동자들의 대립을 다룬 ‘인간문제’(1934), 장애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빈궁의 극한 경지를 그려낸 ‘지하촌’(1936) 등을 남겼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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