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북 日여성의 북한 귀환기

북한의 주간신문 통일신보 최근호(11.26)는 2003년 북한을 이탈, 일본에 귀환했지만 올해 4월 다시 북한으로 돌아온 귀화 일본인 여성 안필화(일본명.히라시마 후데코.平島筆子)씨의 수기를 게재했다.

안씨는 지난 4월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북한 언론 및 평양 주재 외신과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주간지 기자와 일본 인권단체 활동가에 의해 유괴돼 일본으로 갔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안씨의 수기는 전남 나주 출신 남편 오정률씨를 따라 1959년 12월 일본에서 북송선을 탄 얘기로부터 시작됐다.

조선인이지만 근면하고 올곧은 남편의 성품에 반해 부모의 반대를 물리치고 오씨와 결혼을 강행했다는 안씨였지만 북송선을 탈 때까지도 일본인이라고 해서 차별받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씨는 이런 걱정이 모두 기우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북한에 도착하자마자 새 집을 배정받았다며 “내가 명색이 목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우리집은 장마철이면 습기가 차오르고 이끼가 돋는 낡은 목조건물이었다”고 당시의 기쁨을 회고했다.

일본에서 고학을 하면서 전기기술을 배웠지만 조선인에 대한 차별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했던 남편이 평양의 대규모 전기공장에 취직, 기술혁신 공로로 표창장을 받고 구역 인민회의 대의원까지 된 것도 안씨의 기쁨이었다.

그도 동(洞) 여맹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전국대회 대표로 선출됐다.

이런 안씨가 북한을 떠나게 된 것은 2002년 12월초 “잘 살게 해주겠다”는 한 남자의 꾀임에 넘어가 중국 연길(延吉)까지 따라간 것이 발단이 됐다.

그곳에서 다시 다롄(大連)으로 간 안씨는 자신의 호적등본까지 가지고 있던 한 일본 주간지 기자와 일본 인권단체 활동가를 만나 2003년 1월29일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

하지만 안씨는 수기에서 “43년 만에 밟아보는 일본땅이었고 피를 나눈 형제와 친구들도 만났지만 나는 어쩐지 불안했고 숨을 쉬고 밥은 먹어도 사는 것 같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손자들과 영영 이별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안씨는 손자들이 대학과 예술학원에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북한에 돌아갈 결심을 했다.

이에 대해 안씨는 “(그 소식을 듣고)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잔등에 책가방이 아니라 생계비 몇 푼을 얻자고 남의 집 아이를 업어주어야만 했던 어린시절이 눈물 속에 떠올랐다”고 말했다.

안씨는 우여곡절 끝에 북한을 떠난 지 2년여 만인 올해 4월 다시 북한 땅을 밟았다.

그는 “공화국에 돌아온 후 국가의 배려로 평양에 3칸짜리 큰 집을 받고 대학에 다니는 손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며 “내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어머니 내 조국, 공화국을 위해 여생을 깡그리 바치겠다”고 다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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