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복귀하며 北대내정책 보수화”

북한의 대내정책이 2000년~2005년까지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이었지만 장성택의 지위가 강화된 2006년 이후에는 보수적 대내정책으로 전환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남북협력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23일 연구원의 웹사이트에 올린 ‘2006 이래 북한의 보수적 대내정책과 장성택 : 2009년의 북한을 바라보며’이라는 제목의 분석글에서 “정책 변경은 김정일의 선택이지만 정책 실행의 주요 책임자는 장성택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밝혔다.

2000년~2005년까지 북한의 대내정책이 상대적으로 개혁적이었다는 근거로는 1997년 장성택 당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주도한 ‘심화조’ 사건에 대한 김정일의 ‘위로사업’이 2000년 진행됐으며, 2001년 초에는 ‘새로운 사상관점’을 거론했고, 2002년에는 7·1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취해졌다고 박 선임연구위원은 제시했다.

또한 2002년 북일정상회담과 2003년 9월 김정일의 후원을 받은 박봉주가 내각 총리로 취임한 것도 근거로 들었다.

그는 이후 “장성택은 2004년 2월 또는 4월에 실각했다”며 “그 이유 중 하나는 박봉주와의 경제정책 마찰이라는 설명이 있다. 실제로 장성택 실각이후 2004년에 주요 개혁조치가 취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시기 민간차원의 남북경협을 담당하던 민경련의 상급기관으로 민족경제협력위원회를 내각 직속으로 신설했다”며 “이로써 남북경협에서도 내각의 위상이 강화됐다. 2004년 9월~11월 사이에는 노동당 개편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5년 말 장성택의 일선 복귀를 전후로 정책 주도 인물의 교체와 정책 전환이 발생했다”며 “2005년 9월 박남기가 당중앙 계획재정부장으로 취임했다. 이 직책은 당비서국 내에 내각의 경제정책에 대해 견제하고 간섭하는 직책이 재설치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또 “그해 10월에 식량전매제(배급제 재도입) 실시 및 장마당 억제 시도가 있었다”며 “12월에는 장성택이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 제1부부장으로 복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6년 3월 개인고용금지령이 내려졌다”며 “2006년 이후 장사활동에 대한 제한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면서 장사 허가 연령이 도입됐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2007년 1월 박봉주는 시급제, 일급제, 주급제 등 기업 임금제도 개혁을 주장하다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다”며 “그는 결국 2007년 4월 김영일에 의해 교체됐다. 동시에 박봉주가 주도했던 6개월 농사와 기업 개혁 조치가 취소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07년 10월 공안문제를 담당하는 행정부가 중앙당에 재설치되고 장성택은 행정부장으로 승진했다”며 “같은 시기에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고 인민보안성의 역할이 확대됐으며, 시장억제 정책이 한층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때부터 ‘남조선 경계’가 대내정치적으로 중요한 고려 상항이 된 듯하다”며 “11월에는 국가의 식량장악을 위해 ‘초강경 비사그루빠’가 황해도에 파견됐으며 이는 군량미와 ‘수도미(평양공급용 쌀)’의 확보가 주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정책 변화와 관련해 그는 “정책 주도 그룹이 1990년대 이래 2000년 남북정상회담, 2002년 7·1조치 등을 통해서 내부적으로 발생한 변화의 확장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정책방향 정립은 현재 정국을 주관하고 있는 장성택 세력의 대두와 동시에 이루어졌다”며 “주도 정치세력 교체가 없는 한 쉽게 수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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