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당 행정부장 해임?…공안기관 영향력 약화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직후 국내의 다수 전문가들 그리고 해외의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장성택 섭정 군부 집단지도체제’에 의해 운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시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김정은이 아직 ‘독립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장성택은 아직 김정은이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김정일 사망 직후 김정은이 북한의 새로운 ‘수령’으로 결정된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었다. 동년 12월 19일 북한이 5대 주요 권력기관(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공동 명의로 발표한 부고는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계신다”라고 선언했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 북한이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체계’로 나아갈 것임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 최고지도자의 사망 이후 권력의 향배와 관련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는 것이 장의위원회 명단에서의 엘리트 서열이다. 북한은 12월 20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을 발표하면서 유독 김정은에게만 ‘동지’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와 다른 엘리트들을 차별화했다. 그리고 김정은의 이름을 다른 장의위원들 이름보다 훨씬 큰 활자를 사용하여 김정은이 다른 모든 파워 엘리트들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장의위원회 명단에서 장성택은 19번째로 호명되었고, 그가 ‘섭정’할 것임을 예상케 하는 징후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장성택의 대장 군복 착용에 대한 확대해석 

2011년 12월 25일 북한 조선중앙TV는 장성택이 대장 군복을 입고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그러자 일부 전문가들은 그가 김정은 체제에서 막중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김정은 체제를 사실상 섭정할 최고실력자’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장성택이 대장 계급장을 달고 나타나기 전날인 12월 24일 북한은 로동신문 정론을 통해 김정은을 ‘최고사령관’으로 받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내부적으로 김정은을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면서 장성택에게 대장 계급을 수여했다고 볼 수 있다. 장성택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대장 계급을 받지 못해 권위가 서지 않았는데, 그런 장성택에 대해 김정은이 특별히 배려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의 ‘화요협의회’와 ‘금요협의회’ 참여 

비록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김정일 사후 장성택이 ‘섭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김정은의 주요 정책결정에 깊게 참여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와 다른 기관의 정보에 의하면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1년 12월 23일(금) 최고위급 간부회의를 시작으로 김정은은 거의 매주 두 번씩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에 핵심간부 회의를 주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요일 개최되는 협의회(화요협의회)에서는 군부와 관련된 사안을 제외하고 중앙당 산하 각 조직들에서 전주(前週)에 올라온 보고와 긴급처리 안들을 가지고 토론한다.

협의회가 끝나면 김정은은 회의에 참가한 핵심 인사들과 파티 수준의 식사를 같이 하면서 논의한 대안의 현실적 가능성에 대하여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2012년 초 화요협의회의 저녁식사 기본 멤버는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 최태복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의장, 강석주 외교 담당 내각 부총리, 최룡해 근로단체 담당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당중앙군사위원, 문경덕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평양시당위원회 책임비서, 박도춘 군수 담당 당중앙위원회 비서, 리룡하 당중앙위원회 행정부 제1부부장 등이었다. 

김정은이 주관하는 금요협의회에서는 주로 남한, 미국, 중국 등과 관련된 현안들과 안보 문제들을 다루었으며 주로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 구성원들이 참가했다. 이 회의에서는 2012년 초에만 해도 리영호 총참모장(2012년 7월 모든 직위에서 해임됨),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2012년 4월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했다가 동년 말에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직으로 옮김),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2012년 3월경 뇌출혈로 쓰러짐), 최룡해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당중앙군사위원(2012년 4월 총정치국장직에 임명됨), 주규창 당중앙위원회 기계공업부장 등이 중심이 되고 있었다. 이 회의에는 장성택과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도 참가했다. 

장성택은 최룡해와 함께 화요협의회와 금요협의회 모두 참석했다. 그런데 실제로 장성택의 역할은 김정은에 비하여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정권은 김정은에게 있었고 장성택은 핵심참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의 승진  

2012년 4월 개최된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장성택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진했다. 장성택은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아닌 위원들 중에서는 세 번째로, 즉 김경희 당중앙위원회 비서와 김정각 인민무력부장 다음에 호명되었다. 김정각이 군부 인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장성택은 당 엘리트로서 정치국 위원들 중 세 번째로 호명되어 그가 사실상 당내 3인자임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동년 4월 13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에서 발표된 국방위원회 구성원 명단에서 장성택 부위원장의 이름은 오극렬 부위원장보다 먼저 호명되어 그의 높아진 위상이 재확인되었다. 과거에 국방위원회에서 장성택의 이름은 오극렬 다음에 호명되었는데, 오극렬에 대한 장성택의 우위가 분명해진 것이다.


2012년 8월 방중시 국가수반급 대우? 

2012년 8월 13일 장성택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은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라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위화도경제지대 공동개발 및 공동관리를 위한 조중공동지도위원회 제3차 회의’에 ‘조중공동지도위원회 조선측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해 방중했다. 장성택의 방중은 김정은의 공식적 권력승계 이후 이루어진 고위급 방중이어서 특히 국내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장 부위원장을 보좌하게 될 대표단의 면면이 북한의 정상급 대표단을 연상케 한다”고 주장하는 등 장성택이 이끈 대표단의 위상을 과대평가했다. 

그런데 장성택의 방중에 동행한 김성남 당중앙위원회 국제부 부부장, 리광근 합영투자위원장, 김형준 외무성 부상 등 핵심 엘리트 중 정치국 위원이나 후보위원은 단 한명도 없다. ‘정상급 대표단’이라고 간주하기에는 정치적 중량감이 많이 떨어지는 실무형의 인사들로 대표단이 구성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장성택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만난 것을 가지고 그가 ‘국가수반급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북․중 간 고위급 교류의 전통에 의해 북한에서 중요 인사가 방중하면 중국 지도부가 만나주고, 반대로 중국에서 중요 인사가 방북하면 북한 지도부도 만나서 대화했다. 이 같은 전통에 의해 과거 김정일은 방북한 멍젠주(孟建柱) 중국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공산당 조직부장, 장더장(張德江) 중국 부총리, 왕자루이(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을 접견했고, 후진타오 주석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총리, 최태복 당중앙위원회 비서, 김영일 당중앙위원회 국제부장 등을 접견했다. 따라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장성택을 만났다고 해서 장 부장이 ‘국가수반급 대우’를 받았다는 해석은 부적절한 것이다.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임명 이후 위상 강화  

2012년 11월 4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은 ‘국가체육지도위원회’라는 특별 기구의 위원장 직에 임명되었다. 북한은 ‘국가체육지도위원회’의 신설 배경으로 정치군사강국과 경제강국에 이어 ‘체육강국’을 건설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체육지도위원회’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는 장성택, 김기남, 최태복, 박도춘이, 정치국 후보위원으로는 로두철, 김양건, 김영일, 김평해, 곽범기, 문경덕, 조연준, 주규창이 포함되었다. 당중앙위원회 비서국에서는 김정은과 김경희를 제외한 다른 모든 비서들(김기남, 최태복, 박도춘, 김양건, 김영일, 김평해, 곽범기, 문경덕)이 다 들어갔다. 그리고 당중앙위원회 전문부서의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주규창 기계공업부장, 박봉주 경공업부장, 한광상 재정경리부 제1부부장 등이 들어감으로써 장성택은 적어도 체육과 관련해서는 주요 전문부서의 책임자들까지 지도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각에서도 로두철(국가계획위원장 겸직), 김용진 부총리를 비롯해 체육상(리종무), 교육위원회 위원장(김승두), 국가과학원장(장철), 재정상(최광진), 경공업상(안정수), 식료일용공업상(조영철), 철도상(전길수), 무역상(리룡남), 상업상(리성호), 수매양정상(문응조) 등 상당수의 고위급 관료들이 국가체육지도위원회에 포함되었다. 군부 엘리트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최고사령관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최부일 총참모부 작전국장(이후 인민보안부장으로 옮김)과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이 들어갔다. 또한 주민들의 사상교육을 담당하는 4대 근로단체(청년동맹, 직업총동맹, 농업근로자동맹, 여맹)의 위원장들도 모두 포함되었다. 

장성택이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직에 임명된 후 공식행사에서의 그의 서열에도 중요한 변화가 발생했다. 장성택의 위상 강화 조짐은 이미 2012년 8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장성택은 김정각 인민무력부장 다음에 호명되었으나, 동년 8월 25일 김정일의 선군혁명영도 개시 52주년 기념 모란봉악단 화선공연 관람자 명단 발표에서는 장성택이 김정각보다 먼저 호명된 것이다. 이후 9월 중에도 장성택이 김정각보다 먼저 호명되다가 다시 김정각이 장성택보다 먼저 호명되는 반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2012년 11월 19일 김정은이 인민군 제534군부대 직속 기마중대 훈련장을 시찰했을 때 장성택은 김정각보다 서열이 높은 현영철 총참모장보다 먼저 호명되었다.

장성택이 군부의 제2인자인 총참모장보다 먼저 호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동년 11월 30일 항공절 기념 행사에서 장성택은 현영철 총참모장과 김경희 비서보다 먼저 호명되었다. 북한 매체의 호명 순서에서 장성택의 이름이 김경희보다 앞선 것은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 이후 처음이었다. 이는 그가 국가체육지도위원장으로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닌 위원들 중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장성택에 대한 김정은의 의존도 감소 

장성택은 2012년 북한의 파워 엘리트 중 김정은의 공개활동 수행횟수에서 1위를 기록했다. 장성택의 공개활동 수행횟수는 총 106회로, 2위를 차지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85회보다 19회나 더 많았다. 이 같은 사실은 장성택이 작년 한 해 김정은의 가장 편하고 긴밀한 국정의논 상대가 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 한 해 동안 김정은이 빠른 속도로 당과 국가기구의 주요 업무를 파악하고 정책결정까지 주도하게 됨으로써 장성택에 대한 의존도가 급속도로 낮아지게 되었다. 이는 2013년에 들어와 김정은의 공개활동에 대한 장성택의 수행횟수가 급감한데서도 확인된다. 2013년 4월 12일까지 김정은의 공개활동에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33회, 현영철 총참모장이 22회, 김격식 인민무력부장이 21회,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이 14회,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13회 동행했다. 2012년에 수행횟수에서 1위를 차지했던 장성택이 2013년에는 5위로 떨어진 것이다. 

장성택은 2013년 2월 12일의 제3차 핵실험 전 중국 등의 반대와 국제사회의 제재가 있을 것이니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장성택의 의견을 무시하고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 같은 사실은 주요 정책의 결정과 관련해 장성택의 영향력이 매우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2012년 초에만 해도 장성택은 화요협의회와 금요협의회 모두 참석했다. 그러나 2013년 1월 26일 김정은 제1비서가 핵실험과 관련된 중요 정책 결정을 위해 소집한 ‘국가안전 및 대외 부문 일군협의회'(금요협의회의 정식 명칭)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반면에 올해 2월 초 군사력 강화와 관련된 김정은의 지침을 전달하기 위해 개최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장성택이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함께 참석자들 중 첫줄 정 가운데에 앉았다. 장성택이 비록 안보정책 결정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책의 집행과정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직 계속 보유? 

장성택이 국가체육지도위원장에 임명된 후에도 기존의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 직책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상설기구에 필요한 서기장이 국가체육지도위원회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위원회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같은 상설기구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장성택이 국가체육지도위원장에 임명되면서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 직에서는 해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의 확인에 의하면 장성택이 국가체육지도위원장직에 임명된 후 북한에서 그에게 ‘당중앙위원회 부장’이라는 직책을 사용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장성택이 국가체육지도위원회라는 구성원이 매우 화려한 기구의 위원장을 맡게 되었지만, 그가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 등에 대해 당적으로 지도하는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직을 떠나게 되었다면, 체육 분야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커졌지만 공안기관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NK비전』의 동의하에 동 월간지 2013년 5월호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기고문을 데일리NK 칼럼으로 동시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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