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이 나에게 허튼 짓 할 재간 없습니다”

김정은 인터뷰는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노동당 청사 3층에서 4일 오후 진행됐다. 넓은 회의실 탁자에 앉아서 기다리자 어느새 김정은이 김기남 비서와 함께 들어왔다. 청년대장과 노 간부, 묘한 조화였다. 경호원은 따로 대동하지 않았다. 자리에 일어서자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손 감촉이 굉장히 부드럽다. 검은색 인민복 정장에 빨간 김일성 초상 휘장이 반짝거렸다. 얼굴에는 윤기가 흘렀지만 눈매는 날카로웠다. 다소 상기된 표정이다.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는 인사와 함께 평양 날씨가 춥다며 숙소는 따뜻한지 물었다. 자리에 앉자 마자 검은색 줄이 달린 은색 시계를 본다. 시간이 없다면서 인터뷰를 재촉한다. 서로 긴장을 누를 새 없이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지난해 9월 당대표자 이후 후계자로 공식화 됐습니다. 이후 북한 내에서 아버지와 함께 현지지도에 동행하는 모습도 나오고 국가 주요 행사에도 얼굴을 드러내 왔습니다. 최근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기존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제가 백두혈통의 계승자라는 점은 어릴 적부터 아버님이 꾸준히 저에게 강조해 왔습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6년간 유학시절을 마치고 귀국해 1999년부터 김일성종합군사대학에 다녔습니다. 여기서 3년간 군사복무를 겸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아버지(김정일)는 군사복무를 하지 않았지만 저는 직접 했습니다. 그게 저와 아버지의 차이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군대가 어떤 생리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2003년부터 본격적인 후계수업을 시작했어요. 4년 전인 2007년부터는 곁에서 꾸준히 아버지 업무를 돕고 있습니다. 벌써 5년째가 돼 가네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세한 것을 말씀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아버지 곁에서 현지지도를 챙기고 당, 군사 업무를 보좌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겁니다. 발전소 건설과 평양 주택 건설 사업에 눈코 뜰 새가 없지만 다 인민들을 위한 일이니 아글타글 견디고 있습니다.


아, 남조선 동무들은 당분간 우리 군대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내가 당분간 자중하라고 말을 해놨으니 서툰 짓은 안합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동무,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


-(인터뷰 열기를 올리기 위해 다소 의도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 일어났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김정은 씨가 직접 지휘했다는 주장이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남조선에서는 천안함을 우리가 공격했다고 아직도 주장합니까?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남조선 괴뢰군부 호전광들이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가 본데 우린 군대의 매서운 맛을 더 봐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남조선 당국의 결과 발표는 당신네 인민들도 절반은 믿지 않는 것 아닌가. 유엔에서도 우리 소행이라는 구체적인 결론을 내린 적도 없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남조선에서 불상사만 생기면 어떻게든 우리와 연계시켜 보려고 어리석게 획책하는데 우리한테 따지기 전에 남조선 내부부터 돌아보세요. 연평도에 대한 우리의 대응 포격은 자위권 차원입니다. 민간인이 희생된 것은 유감입니다만, 이게 우리 책임이 아니지 않습니까? 군대를 방어하려고 인간방패를 세워논 남조선 책임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을 하게 되면 우리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몇 차례 경고했습니다. 남조선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사격훈련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신성한 영토 주권을 지키기 위해 자위권을 발동했습니다. 내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입니다.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을 받았어요. 동무, 이건 쓰지 마시오. 생각해 보시오. 대응 포격 결정은 당연히 나와 아버지가 결정한 일이요.   


-연평도 포격을 주도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가요?


주도했다, 안 했다 이런 말꼬리를 잡지 마시오. 우리 공화국을 아직도 모르는군요. 남조선 문제와 군사 문제는 아버지와 제가 전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을 집니다. 내가 책임 있는 자리에 있으면 책임을 지는 겁니다. 남조선 괴뢰호전광들이 연평도 사태를 확대시키기 위해 한 차례 더 포사격 훈련을 했는데 우리는 말려들지 않았어요. 조선반도 긴장고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전 세계는 똑똑히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 평화애호 세력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가라 앉히는 의미에서 개인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전속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 씨가 1983년생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9세 생일잔치가 1992년에 열렸고, 아버지가 직접 돼지띠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올해 정확히 몇 살입니까?


후지모토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군요. 물론 그와 함께 몇 해 동안 생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나와 우리 가족에 대해 한 이야기는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타고난 띠가 돼지이든 멧돼지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의 조부인 수령님이 1912년생, 아버님이 1942년생, 저는 1982년생입니다. 올해 스물아홉입니다. 태어난 해가 모두 2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령복, 장군복, 대장복을 타고 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친형인 김정철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여동생 여정 씨는 지난해 당대표자회가 끝난 후 기념촬영도 함께 했는데 정철 씨는 통 보이질 않는군요.


서방에서는 정철 형님을 두고 여성 호르몬 때문에 목소리나 체형이 여성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벌써 가정도 꾸리고 자식도 낳고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정철 형님 손자들을 얼마나 예뻐하는지 모릅니다. 정치에는 워낙 관심이 없어요. 나하곤 다릅니다. 뭐랄까, 좀 사람이 소박해요. 


-그럼 정철 씨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우리 형님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동무는 내가 허튼 소리나 할 사람처럼 보이요. 그래도 정철 형님은 항상 동생을 믿는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평일 삼촌처럼 해외 대사관에 근무하고 싶다고 합니다. 제가 그래서 ‘조선은 나에게 맡기고 해외에 나가 편하게 생활하시라’고 권했습니다. 머지 않아 구라파(유럽)에 대사직으로 나가 활동할 겁니다. 본인이 그게 편하다면 말이죠.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흘렀다.)


-외모가 조부(김일성)를 닮았다는 평이 많습니다. 당대표자회에 나선 모습은 30대 초반의 김일성과 매우 유사한데요. 일부러 연출을 한 느낌까지 받습니다. 무슨 의도가 있나요?


제가 수령님을 닮긴 닮았습니까?(웃음) 하긴 저도 그런 말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제가 바로 만경대 가문의 적통이에요. 그리고 수령님이 어떤 분입니까? 항일무장투쟁을 직접 지도하신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입니다. 한 세기에 두 제국주의를 박살냈단 말이죠. 그런 분과 닮았다는 것은 저에게도 큰 재산이지요. 짧은 상고 머리와 앞머리를 가운데 가르마로 뒤로 넘긴 것은 수령님을 닮게 신경 쓴 게 맞습니다. 솔직히 악수를 하거나 박수를 칠 때도 그 분 모습을 배우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아직도 수령님을 경애하는 마음이 하늘을 울리기 때문에 저에게서 수령님의 모습을 보면 기뻐할 것이 자명하다고 봅니다. 그런 마음에 보답을 해야지요. 풍채는 수령님이 저보다 훨씬 큽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내 키가 더 커야 하는데 담배 때문에 크지 않았다고 나무랄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처럼 키 높이 구두를 신을 정도는 아닙니다.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할 때 중국 고위 간부들을 만났는데 제 키보다 큰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과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외부 사회에서는 장성택이 당신의 권좌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이런 질문은 곤란합니다. 동무, 남조선은 남의 가정사에 그리 관심이 많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 고모부는 제가 후계수업을 받는 동안 계속 옆에서 저를 지켜보고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시중에 고모부가 ‘야심가’라는 말을 한다는 소리는 저도 들었습니다. 어느날 최룡해가 날 찾아와서 ‘장 부장을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을 하더군요. 저는 손을 저었습니다. 아직은 고모부가 필요합니다. 아버지도 오늘 내일 할지 모르는데 늙다리 간부들이 제 말만 듣겠습니까?  


저도 위성방송으로 남한TV를 다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조선 전문가들이 하는 말도, 토론도  다 봤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시면 나를 밟고 조선을 좌지우지 할 거라고 말도 하더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바보가 아닙니다. 그리고 고모부는 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저를 보필하겠다고 충성 맹세를 했습니다. 고모부가 당 행정부장으로 보위(정보기구)사업과 보안(경찰)사업을 하면서 저에게 필요한 정보를 다 정리해주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두 단위에서 개별적으로 따로 정보 보고를 받습니다. 고모부가 허튼 보고를 하면 제가 다 알게 돼있습니다. 고모부는 그럴 재량이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큰 대장(정철), 작은 대장(정은)으로 불리던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내가 김정은입니다. 한 나라를 물려 받은 상속인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제 말이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제 가족과 간부들, 평양 사람들은 목숨처럼 받아들입니다. 제가 고모부하고 권력 싸움이나 하고 있으면 저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습니까? 고모부는 화폐개혁처럼 어려운 난관이 조성될 때는 직접 박남기를 총살하고 분위기를 다잡았습니다.


저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하고 있어요. 고모부보다 성깔은 고모가 훨씬 더합니다. 고모부는 고모 앞에서 아무 일도 못해요. 고모도 항상 저를 아껴줍니다. 그러니 걱정을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혼자 다 했지만 저는 고모와 고모부, 옥이 이모(김옥을 지칭), 동생 여정이도 있습니다. 가족들이 다 제 일을 거들고 있으니 저 혼자 긴장할 필요가 없지요.


-아버지가 김정은 씨에게 권력을 다룰 때 이런 것을 주의하라고 조언해주는 것이 있나요? 주로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관리하라고 말을 해줍니까?


우리 아버지, 김정일 장군님은 정말 대단합니다. 아버지는 묘한 능력이 있어요. 아십니까? 아버지 앞에만 서면 사람들이 거짓말을 못해요. 사람을 꿰뚫어 보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사람이 무슨 말만 하면 저건 어떻게 다뤄야 한다는 말씀이 바로 나옵니다. 그게 바로 김정일 정치이고, 김정일식 용인술이죠. 


아버지는 저에게 항상 하는 말씀이 ‘너하고 동생(여정) 빼고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도 가까운 사람들한테 너무 많은 배신을 당하다 보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도 있지만, 항상 사람을 의심하고 실험해야 긴장을 늦추지 않고 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그 말이 백 번 옳다고 생각합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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