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이 김정은 배후조종? 당분간 ‘멘토’ 충실

김정은의 제1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전례 없이 대장군복을 입고 조문해 내외에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그만큼 어린 지도자를 보위하는 후견인의 일거수 일투족에 쏟아지는 관심이 크다는 점을 반영한다.   


장성택의 대장 군복 착용은 그가 당·정에 이어 군부에까지 영향력 행사하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장성택을 ‘수양대군’에 비유하고 ‘섭정’이라는 과장된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점 또한 그의 우월적 지위를 포장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장성택은 현재의 지위에 오를 때까지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자신의 ‘측근 챙기기’ 때문에 두 차례 실각했다가 다시 정계로 복귀했다. 1978년 김정일의 측근 파티를 따라하다가 김정일에게 적발돼 강선제강소 작업반장으로 좌천됐다.


2004년에는 측근의 호화 결혼식에 참석한 것이 문제가 돼, ‘분파조장’의 혐의로 직위를 박탈당했다. 이 과정에서 ‘장성택 라인’의 인사들까지 모조리 숙청당했다.


두 차례 숙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기에 성공했다. 김정일이 혈연에 집착한 것도 있지만 그의 능력과 충성심을 높이 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북한 내부에서는 그를 야심가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넘볼 수 없는 배경을 가진 인물’이라는 평가가 더 어울린다.


장성택은 점잖으면서도 사리분별이 빠르고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에 대해 평가는 ‘똑똑하고 젊잖지만 냉혹한 면으로 상대방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1995년 북한 함경북도에 주둔하는 6군단에서 군사 쿠데타 모의가 발각됐다. 이 쿠데타 모의를 진압한 후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처형을 위해 군부 핵심인사들이 동원됐다. 


고위 탈북자에 따르면, 군부 핵심 인사들을 뒤에 두고 권총으로 반란 주모자들을 직접 처형한 사람이 바로 장성택이었다. 장성택은 김영춘 당시 6군단장 등이 보는 앞에서 직접 주모자들에게 권총을 당겨 자신의 행정부장으로서의 지위를 각인시켰다고 한다. 


故황장엽 노동당 비서는 “측근 파티에서 김정일이 장성택의 뺨을 때린 적이 있는데, 그는 돌아서서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배짱이 있고 카리스마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장성택은 누구도 부인 못하는 김정은 시대 실력자다.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몇 개월 사이 국정을 빈틈 없이 관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섭정’보다는 우리식 표현으로 ‘멘토’에 가깝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정일은 줄곧 그 누구와도 권력을 나누지 않는 통치 스타일을 보여왔다. 만약 장성택이 자신의 후계 체제를 위협할 인물로 보였다면 ‘권력유지’에 철두철미했던 김정일이 곁에 두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장성택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4성 장군복을 입은 장성택의 등장에 대해 “김정은이 전체 권력을 실질적으로 승계한 상황에서 초기 (후계 과정에서)중심적 역할을 한 장성택을 적절히 배려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대장 장성택’에게 곧 바로 힘이 쏠린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한 국책연구소의 연구위원은 장성택의 영향력 행사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장성택의 4성 계급은 북한 내부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지난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올라서면서 이미 대장 칭호를 받았을 것”이라면서 “북한에서 선군정치가 시작되면서 부상한 인사들은 모두 군사 칭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09~2010년 사이 장성택 ‘2인자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만약 그때 그가 대장 칭호를 받았다면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숨겼을 것이다. 외부에 이 사실이 번지면 ‘2인자설’ ‘섭정설’ 등이 더욱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