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급회담 첫날부터 `신경전’

1년여 만에 재개된 장성급 군사회담은 남북 수석대표 간의 미묘한 신경전으로 시작됐다.

정승조(육군 소장) 남측 수석대표는 회담 무대에 데뷔하는 터라 다소 긴장된 모습을 보인 반면 1990년부터 얼굴을 내민 북측 단장 김영철 인민군 중장은 회담 전문가답게 노회한 태도로 일관했다.

두 사람은 오전 전체회의 직전 공개된 환담에서 민주주의, 민심론, 회담 진행 방식, 대표단원 구성 문제 등으로 대립했다.

먼저 김영철 단장이 미국 인터넷으로 읽었다는 ‘대통령 살리기’란 유머를 화두로 던지면서 ‘뼈 있는 대화’가 오고 갔다.

김 단장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및 이란 문제와 조선반도의 핵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다 앞에 오는 차를 의식하지 못하는 위험에 처했다가 옆을 달리던 고등학생들이 소매를 잡아당겨 위기를 모면했다는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놨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이들에게 소원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한 학생이 이라크에서 미군이 싸움을 하는데 나를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보내달라. 제가 좀 바로 잡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학생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우리를 위한 묏자리를 부탁한다. 부모님이 부시 대통령을 위기에서 구한 것을 알면 우리를 죽일 것이라고 했다”고 김 단장은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에 관한 인터넷 유머를 언급하며 미국의 대외 군사정책을 간접적으로 꼬집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수석대표는 ‘민주주의론’으로 맞받았다.

그는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그런 유머가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반영된 게 아니냐”며 “통상 어떤 곳에 가면 정치 지도자를 대상으로 그런 윤화(유머)를 구상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된 곳이 많다”고 말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치 지도자를 대상으로 유머를 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는 뜻으로, 북한사회도 이런 범주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란 해석이 가능한 답변이었다.

이어 정 수석대표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을 대상으로 그런 유머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선진화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촌평했다.

그러자 북측 김 단장은 “민주주의라는 게 참 중요하다”고 얼버무린 뒤 최근 종영된 MBC 사극 ‘주몽’을 예로 들며 일단 예봉을 피해갔다.

그는 “얼마 전에 남조선에서 만든 영화 주몽을 본적이 있다. 그 주몽에서 민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유민들의 민심, 강성나라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민심을 타는 정치 지도자들은 언제나 승리한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김정일 위원장께서 최근 일꾼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주 뜻깊은 말씀을 하셨다. 민심은 천심이다, 민심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 일꾼들은 민심을 읽으면 성공한다”고 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도 있다는 정 수석대표의 ‘뼈 있는 말’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심론’으로 맞받아친 셈이다.

남측 대표단에 해군 관계자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신경전의 소재가 됐다.

정 수석대표가 남측 대표단을 일일이 소개하자 북측 김 단장은 “이번 (남측)대표단에서 해군이 왜 없느냐”고 일침을 가한 것.

이에 정 수석대표가 “귀측에서 5월 2일 시험운행 위한 군사분계선 통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장성급 회담으로 수정 제의했다. 우리는 그에 따라 도로.철도 통행에 따른 군사보장 조치 논의에 적합한 대표들을 선정해서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북측 김 단장은 “이번에 열차 시험운행에 관련된 문제만 토론한다고 그렇게 강조하지는 않았다. 명백히 말씀 드린다”고 발언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북측은 궁극적으로 서해 해상경계선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서해상 충돌방지와 공동어로 실현문제 등도 논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김 단장은 또 이번 회담을 공개회담으로 하자고 제의해 우리 측 대표단을 잠시 긴장시켰다.

그는 “우리 대표단은 서해상 해상충돌을 방지하고 공동어로를 실현하는 문제를 논의한 제3차, 4차 장성급회담을 하고 오늘 회담까지 나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우리의 회담 진행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의미에서 공개회담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았다”며 “우리 의견을 받아들일 용의가 없느냐”고 물었다.

북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선전해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로 각종 남북 회담을 공개적으로 진행하자는 주장을 자주 펴고 있으며 심지어는 기조발언문을 남측 기자들에게 전달하려 한 적도 있었다.

정 수석대표는 “군사회담은 비공개로 진행해 온 것이 관례였으며 그런 관례를 깰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다”며 비공개 회담을 고수했고 북측도 “그럼 우리가 받아들이겠다”며 비공개 회담 제안을 거둬들였다./판문점=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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