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급회담 서해 `평화의 장’ 현실화되나

남북은 지난 8일부터 나흘간 판문점 북측지역인 통일각에서 진행된 제5차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적지않은 결과물을 도출했다.

우선 오는 17일로 예정된 경의선.동해선 시험운행을 위한 군사보장에 합의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비록 우리 측이 목표로 했던 철도.도로 통행을 위한 항구적 군사보장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시험운행을 군사적으로 보장함에 따라 1951년 6월 12일 전쟁 통에 운행이 전면 중단됐던 경의선이 56년 만에 휴전선을 관통할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또 공동어로 실현, 북측 민간선박의 해주항 직항문제, 경제협력 교류를 위한 군사보장 등에 대해 협의를 해나가기로 한 것도 남북 간 경제교류 활성화는 물론, 군사신뢰 구축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다만 구체적 일정에 대한 합의 없이 대체로 원칙적이고 선언적 수준에서 합의돼 앞으로 합의사항을 어떻게 현실화 시킬지가 관건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한 전문가는 “군사회담에서 경제협력사업을 지원하는 문제까지 협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면서 “그러나 공동보도문에 이행을 강제할 조항이 없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합의 곳곳에 숨겨진 `복병들’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이날 합의된 군사보장 분야 대부분이 그동안 합의됐던 사안이었지만 돌발변수로 인해 시행이 중단됐거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우선 평화 정착과 민족의 공영을 위해 서해상에서의 공동어로를 실현하기로 했지만 이는 이미 지난해 3월 제3차 장성급회담에서 우리 측이 서해상에서의 충돌방지 방안과 함께 제안했던 내용이다.

북측은 당시 서해상에서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근원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북방한계선(NLL)을 포함한 서해상 경계선 재설정 문제가 최우선 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며 구체적 논의를 거부했었다.

이 때문에 북측이 이번 회담에서 오히려 공동어로 수역 설정을 강력히 요구한 사실이 눈에 띤다.

북측이 NLL 재설정 문제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던 기존 전략을 바꿔 공동어로라는 간접적 방법을 통해 NLL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측은 그동안 기존 NLL 남방에 공동어로 수역을 설정할 것을 주장, 서해 경계선 재설정 쟁점화를 유도해왔다.

북측은 회담 사흘째인 10일에도 해군사령부 담화를 통해 “남조선 호전광들은 무력을 증강하고 전투함선을 내모는 것으로 우리를 견제하고 불법비법의 북방한계선(NLL)을 고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며 NLL을 불법비법이라고 표현하는 한편, 제3의 서해교전 발생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비록 `신뢰조성에 따라’라는 전제 조건이 붙긴 했지만 북측 민간선박의 해주항 직항문제를 협의키로 한 것도 공동어로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해주항 직항이 실현되면 북한 선박은 해주항을 출발해 연평도와 인천 앞바다 사이를 지나 우리 측 서해로 빠져 나갈 수 있다. 해주항 직항 문제는 북측의 숙원사업으로 알려졌으며 북측은 제3차, 4차 장성급회담에서도 해주항 직항을 요구해왔다.

이 같은 해주항 직항은 남북 경제 활성화와 긴장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호재이기도 하지만 북한이 NLL 무력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전문가는 이와 관련, “해주항 직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북한 내부에서 NLL 문제를 의제화하는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보도문에는 NLL 문제가 직접적으로 표현돼 있지는 않지만 NLL 문제는 여전히 잠복해 있고 이 때문에 앞으로 공동어로 수역 설정과 해주항 직항을 위한 남북 간 협의에서 북측이 서해상 경계선 재설정 문제를 또다시 들고 나온다면 남북 간 갈등은 고조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은 이번 공동보도문에서 민감성과 폭발성을 수반하는 공동어로, 해주항 직항 등을 협의키로 하면서도 북측의 서해 경계선 재설정 요구에 대해서는 국방장관 회담에서 논의하자는 기존 스탠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보도문에 장성급군사회담의 진전에 따라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이 빠른 시일 내에 개최되도록 적극 협력하기로 한 대목도 이 같은 맥락에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6자회담에서 북핵 불능화가 가시화 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북한의 서해 경계선 재설정 요구에 대한 논의 환경이 보다 유연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이와 함께 우리 측이 요구해왔던 철도.도로 통행을 위한 항구적 군사보장과 한강하구 골재채취, 임진강유역 수해방지 등은 공동어로 실현과 해주항 직항 등의 진척과 맞물려 `주고 받기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