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는 전투…능력껏 먹고 살 수밖에”

북한 주민 A 씨는 평양 장마당에서 중국에서 들여온 옷가지를 팔고 있다. 그는 최근 장마당 쌀값이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주위에 굶어 죽는 사람을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열 집에서 두 집 정도는 죽으로 버티고 있고, 이마저도 두 끼 밖에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위에 간부들 빼고는 배가 나온 사람이 없다는 말로 현 상황을 설명했다.

“평양 쌀값도 3천 원대까지 올랐지만 5월 하순부터 조선쌀 중에 10분도(정미를 가장 많이 해 미질이 우수한 쌀)가 2천500원, 8분도(중간 질)가 2천400원, 현미 같은 것은 2천300원 합니다. 안락미(동남아 수입쌀)는 2천300원 정도 합니다.

미국에서 쌀이 들어온다고 방송도 나오고 하니까 식량 가격을 내려서 미리 처분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강냉이 가격이 아직 1천500원 수준입니다. 장마당에 쌀은 안 부족한데 강냉이는 부족합니다. 작년에 콩을 심으면 두부를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리가 많아 너도 나도 옥수수 대신 콩을 심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A 씨에 따르면 평양에서 간부 계층 20%와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 20%, 이들 약 40%는 대부분 입쌀을 먹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년 하반기에 다음해 식량을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식량 가격이 올라도 별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나머지 40% 일반 주민들은 강냉이와 쌀을 일부 섞어 먹거나 강냉이밥과 국수로 대신하고, 최하 계층 20%가 죽으로 버틴다고 했다.

북한에서도 취약 계층으로 분류되는 이 20%의 주민들은 주로 옥수수와 남새(채소), 또는 두부 찌꺼기와 남새를 섞어서 죽을 쒀먹는다. 5월이 지나면서 봄배추가 나와 1kg에 40원 정도 하니까 그래도 조금 수월해졌다고 한다. 두부는 4인 가족이 죽을 끓여 먹을 수 있는 한 뭉치에 200원 정도라고 한다.

“요새 살아가는 방법은 누가 뭐라 해도 장사죠. 행사에 자주 동원되는 중구역이나 주변 사람들 빼고는 열 집에서 일곱 집은 장사를 합니다. 평양 통일 시장에 장사하는 사람만 5~6천명 됩니다. (판)매대가 가로 세로 50센티미터씩이에요. 시장 밖에도 2천명은 됩니다.

“미국에서 쌀 들어온다고 하니 식량 가격 내려”

골목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통일시장은 통일거리 사람들이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은 장사를 할 수 없어요. 통일시장만 해도 기본 8천명입니다. 물론 통일 시장이 크니까 다른 구역 간부들이 물건 사러 오기도 많이 합니다.”

A 씨는 시장에서 공업품(옷가지 등 중국에서 들여온 각종 물품)이나 화장품 장사는 돈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공업품 장사는 보통 하루에 5천원, 한 달이면 15만원 정도 벌이가 된다고 말했다. 하루에 쌀 2kg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돈을 가장 잘 버는 사람들이 수산물 장사라고 한다. 하루에 7~8천 원가량을 번다고 한다. 수산물은 쌀과 돈이 있는 간부들이 많이 사간다고 했다.

취약 계층은 장사 밑천이 없으니 국수나 음식 장사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보통 하루 장사에 1천500원을 번다고 한다. 강냉이 1kg을 살 수 있을 정도다. 또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은 물통을 가져다 놓고, 밥이랑 반찬이랑 술안주를 현장에서 판다고 한다. 악착 같이 벌어야 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장사도 전투라는 생각이다.

“평양 사람들은 장사를 해서 식량을 삽니다. 그런데 식량 사정이 긴장하니까 하루 두 끼 먹고 한 끼를 굶는 집들이 생겼습니다. 쌀을 먹는 집도 예전에는 쌀과 강냉이를 5:5 섞어 먹었는데 지금은 2:8, 3:7로 먹습니다. 그래도 쌀을 섞어 먹는 사람들 중에는 외부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중국 친척이나 일부 탈북한 사람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살기도 합니다. 일부 운전이나 외화벌이 기관에 있으면 돈벌이가 되니까 먹고 살기가 일반 사람들보다는 수월합니다.”

A 씨는 평양시 주변에 있는 한 농장에서 지난해 농장원들이 1년 치 식량의 70%를 분배 받았다고 말했다. 지방에 비하면 사정이 훨씬 좋은 편이다. 그러나 분배 식량이 부족한 데다 필요한 옷이나 물건을 사야 하기 때문에 식량은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개인 텃밭과 뙈기밭이 필수다. 남새 같은 농장 생산물을 빼돌려서 장사를 하거나 평양 외곽 산골을 돌면서 뙈기밭(야산 중턱에 화전으로 일군 밭) 농사꾼들에게 강냉이와 공업품을 바꿔서 이윤을 남기는 일도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A 씨는 장사가 여유롭지 않은 집에서는 가축을 몇 마리 키우거나 약초를 캐고, 집에서 술을 만들어 파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술 찌꺼기는 가축들 먹이라도 쓴다고 한다. 강냉이를 원료로 술 두 병을 해서 팔면 500원 정도가 남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당국이 집에서 술을 담그는 일을 엄격하게 단속하면서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한다. 술을 만들다 적발되면 인민반장과 함께 추방시킨다고 말했다.

“가장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수산물 장사”

양봉도 한 철 돈 벌이로는 괜찮다고 한다. 아카시아 꽃이 피는 5월이 되면 산에서 꿀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평양시 주변에는 그래도 산에 나무들이 있어 양봉이 가능하다. 한 사람이 보통 15개 정도를 해서 한 달에 꿀 100kg 짤 수 있다. 이러한 꿀들은 대부분 약에 쓰려는 사람들이나 간부들이 사서 먹는다고 한다.

A 씨는 공장 노동자들은 일터에 나가도 배급이 없으니까 자기 능력껏 먹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평양 주민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해외 돈벌이에 나서려고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평양은 러시아나, 중동으로 돈을 벌러 나가는 것이 출세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시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로 일하러 나가는 것이 최고 목표입니다. 최근에는 러시아, 중동,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콩고까지 나가요. 그 사람들은 나가서 3년 만에 들어옵니다. 다시 나갈 수도 있고 그냥 북한에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로 콩 농사지으러 간 노동자들은 3년 만에 들어오면서 1~2만 달러는 벌어오는 것 같아요.

그 돈이면 집도 사고 장사 밑천도 크게 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 나간 사람들은 기관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농사도 따로 짓고, 장사도 하면서 악착 같이 돈을 모아요. 최근에 이렇게 돈 벌러 나간 숫자가 주변에 꽤 있습니다. 남성 노동자 100명에서 하나 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외국 나가려면 300~400 달러는 돈을 고여야(바쳐야) 합니다.”

A 씨는 이렇게 돈을 벌어온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힘들게 벌어온 돈이라서 그런지 주변에 인심을 크게 쓰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돈을 벌어오면 대부분 ‘돈주 아파트’로 부르는 고급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여유 돈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조선 사람들 사정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고난의 행군 이후에 개인들이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개인 텃밭, 친척 방조, 장사, 해외 파견, 도둑질이든 뭐든 해서 돈이 좀 생겼습니다. 그러니 이제 국가에서 개인들에게 각종 명목으로 돈을 내라고 합니다. 물건은 부족한데 국가에서 매일 돈을 찍어 내니 물가가 뛰죠. 지금도 신의주에서 물건 잡고 안 놔주지 않습니까? 그냥 세관만 열어주고 안 괴롭히면 백성들 굶지 않는데 참 국가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