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붕괴 전에 동독 민주화혁명 진행중이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동독 내부서 진행되던 민주화 혁명과 미국과 구소련간 탈냉전 분위기 등 외부 요인들이 맞아 떨어져 이뤄진 것입니다.”


베른트 플로라트 구 동독 국가안보문서 연방위원회 이사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20년과 한반도에의 교훈’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학술회의 기조발표문에서 “11월9일을 독일통일의 시작으로 보는 외부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외부 요인만이 아니라 동독에서 이미 진행되던 민주화라는 내부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해 장벽이 붕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무엇보다 동독 내부에서 면면이 내려 오던 노동운동 세력과 기독교 공동체 안팎의 시민사회 진영이 공산 독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시민으로서의 의식이 깨어난’ 동독 주민들이 여기에 호응했기 때문”이라는 것.


또 당시 “공산권 경제의 침체로 독재 체제에 파열이 생기면서 동유럽 사람들이 더 이상 (정권의) 테러와 억압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공산당원들도 민주화를 막기보다 대세의 변화를 추종한 것도 한몫 했다”고 플로라트 이사는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동유럽의 민주화를 진지하게 추진하고 구소련이 제국주의적 야망을 접고 철수”한 것이 외부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회의를 공동주최한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의 발터 클리츠 한국사무소 대표는 “주변 국가와의 상호 공존, 그리고 화해정책을 통한 점진적인 통일 방식”을 독일 통일의 핵심요소라고 지적하고 “한반도의 경우에도 남북간 무역, 통신, 협상을 통해 우선 사회 각 부문의 공유된 정체성을 남과 북이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한국의 대북 포용 정책도 상호교류의 확대를 통한 장기적인 북한변화 전략으로서, 노태우 정부의 7.1 선언에서 비롯돼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진화해온 것”이라며 “미래의 남북 통일을 위해, 유일한 대북 정책 기조는 대북 포용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현 정부도 이런 대북 포용 정책의 역사성과 현실성을 인식, 이를 더욱 체계화하여 북한의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는 “독일의 정치인들이 유럽공동체의 성립을 염두해 두고 통일 정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독일 통일이 수월할 수 있었다”며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만의 통일의 관점이 아닌, 역내 국가들 차원에서 논의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성립 여부와 관련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동아시아는 유럽의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기구나 다자적 지역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으로, 과거 역사 문제, 상이한 정치 체제 등으로 인해 유럽과 같은 강력한 지역협력 기제가 발전하기 어려운 조건하에 있다”고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선 오히려 각 국가의 주권을 보장해주는 느슨한 연계 형태의 ‘중위통합체’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한국이 이러한 동아시아 중위통합체의 가교 역할을 담당”할 것을 박 교수는 제언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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