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사람보다 돼지가 우선인 北현실 안타까워

북한에선 7부터 8월까지 장마철이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북한에서 보냈던 장마철 나날들이 주마둥처럼 스쳐간다.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부부싸움과 대피소동이 벌어진다. 만성적인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난한 가정에게 장맛비는 또 다른 가난을 불러온다. 기자가 살던 동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8월 이쯤이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단층집 지붕마다 비가 새는 구멍에 비닐박막(비닐막) 조각이나 해어진 쌀 마대들로 매워져 있다. 그 위엔 돌이 놓아져 있다. 하지만 장마철 굵은 빗줄기가 내리면 무거운 돌도 날려 버리고 식구들이 잠을 자고 있는 방으로 비가 들이친다.

천정에서 새는 빗줄기는 그래도 참을만 하다. 돼지 우리가 된 부엌마루에 장맛비가 샘솟듯 넘치면 돼지는 동네 떠나갈 듯 울어댄다. 돼지는 집안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덩치가 작은 녀석은 60kg, 잘 키운 큰 놈은 80kg이 된다.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장마당에 팔아 식량을 넉넉하게 살 수 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한푼 두푼 돈을 모아 돼지새끼를 사고 자식보다 더 애지중지 키우던 돼지가 장맛비로 익사하게 생기면, 온 가족이 동원돼 돼지 구하기 작전을 펼친다.

때문에 돼지는 사람보다 우선이다. 이쯤되면 남편, 자녀도 귀하지 않다. 가두여성(전업주부)들은 남편에게 소리치며, 돼지를 끌어올리지 않는다고 야단법석이고 급기야 부부싸움으로 번진다. 일단 돼지를 안아 방바닥에 끌어다 올리고 아랫목에 이불을 깔아준다. 장마철 습기로 대장염이나 전염병에 걸리면 큰 돈이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 아내들은 돼지 살리기에 여념이 없다.

여성들은 어떻게든 돼지를 살려보려고 장마당에서 비싼 약을 모조리 사들인다. 이렇게 해도 낫지 않으면 돼지 귀나 꼬리를 가위로 잘라낸다. 어떤 근거가 있는지는 모른다. 보통 이렇게 하면 신기하게 낫는 경우가 있어, 돼지를 키우는 주민들은 돼지가 죽을 것 같으면 귀나 꼬리를 자른다. 하지만 장마철이면 꼭 돼지들이 전염병과 설사로 죽어 나간다. 생활의 큰 밑천을 잃은 여성들은 서럽게 장맛비만큼이나 눈물을 쏟아낸다.

장맛비는 여성들의 이러한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절없이 내린다. 장맛비는 동네부락을 절반이나 잠길 정도로 내리기도 한다. 고층 아파트는 그래도 다행이지만 단층집 주민들은 잠자리를 찾아 대피소동을 벌리는데 전쟁판을 방불케 한다. 돼지 살리랴, 장맛비 피해 잠자리 찾으랴,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런 불안에 빠져 있을 주민들을 생각하니 짠하다. 

이런 가운데 북한 관영 TV 매체는 김정은 원수님 사랑으로 평양문수거리 고급아파트가 건설되어 주택문제가 해결됐다고 선전한다. 원수님의 사랑은 왜 간부들에게만 주어지고 주민들에게는 장맛비조차도 막아 주지 못해 하루 하루 생존으로 허덕이게 하는지 북한의 현실이 서글프다. 때문에 장마철이면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진다.

‘노아의 홍수’가 김정은을 비롯한 고위간부들의 아파트를 밀어버리고 돼지 한 마리 살리기 위해 허덕이는 불쌍한 주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할 방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창밖의 비 소리를 들으며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