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량 아사 시기(1990년대 중반)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른바 ‘장마당 세대’는 배급체계가 붕괴된 이후 국가의 혜택을 거의 받지 않고 장마당을 통해 자력갱생한 세대다. 때문에 북한의 장마당 세대는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약하고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도 많다. 이들은 시장을 통해 각종 정보를 얻고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 보며, 당국의 체제선전을 믿지 않는다.
내부 소식통들은 향후 김정은 체제의 ‘중심층’인 장마당 세대들의 충성심을 얻지 못하면 김정은 우상화를 비롯한 체제유지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이들의 의식변화를 일어나고 있으며 당국의 통제와 단속 강화에도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최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시장을 통해 외부 정보를 접한 젊은층들은 공화국에서 만들어 놓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생각을 하며 자유롭게 행동한다”면서 “(당국이) 선전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이전 세대와는 달리 외부세계를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장마당 세대에 대해 소식통은 “이러한 젊은층이 장마당 세대로 볼 수 있다”면서 “시장을 통해 먹고 살고 시장을 통해 외부 정보를 접하는 장마당 세대는 기존 나이가 있는 세대와 달리 신식 사고를 하고 체제에 충성을 다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평안남도 소식통도 “젊은이들은 ‘꽃을 사는 돈을 아껴 빵을 산다’는 말을 자주 한다”면서 “이는 위(당국)에 바치는 것보다 개인의 살 궁리를 찾는 게 낫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소개했다.
장마당 세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류(韓流)다.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한국의 문화에 빠진다. 한국식 말투나 패션, 그리고 드라마 주인공을 동경하며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다. 최근에는 한국행(行)을 원하는 장마당 세대가 늘고 있다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특히 IT(정보기술)에 비교적 능숙하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세대보다 한국 문화를 빠르게 접하게 된다. 또한 한국 영상물을 친구들에게 공유하는 등 북한 당국이 경계하는 반(反)사회주의 풍 가담에도 거침이 없다.
양강도 소식통은 “여기(북한) 아이들은 당국이 제작한 선전 영상물은 아예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싫증을 내면서 남조선의 새로운 문화를 접하려고 하는 등 자유로운 요구를 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북한 당국의 고민은, 장마당 세대들의 충성심 약화다. 장마당 세대는 김일성에 대한 기억은 아예 없고 김정일에 대한 기억은 배고픔을 안겨준 지도자라는 이미지다.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북한 당국에 기대기보단 시장에서 장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해 왔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이와 관련 “장마당 세대는 김정은 우상화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처벌을 우려해 겉으로는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들의 김정은에 대한 생각은 그저 우리 또래의 젊은 지도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소식통은 “우상화 교육을 그냥 개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은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당국에 의한) ‘반복적 학습’에 피동적으로 움직이고는 있지만 자율적 분위기를 중시하면서 본인만의 생각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양강도 소식통도 “시장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정은에 대해 좋게 말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지만, 대체로 관심이 없다”면서 “겉으로는 충성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마음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관리는 김정은 의도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장마당 세대를 통해 북한 체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자본주의 사회에 젖어 있는 이들이 사회주의 체제에 복종하지 않는 개혁적 성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장마당 세대들에게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이야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통일이 한반도의 미래에 더욱 유익하다는 점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또한 그들이 후에 북한에서 주도권을 잡았을 때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정치적인 공작과 심리전보다는 북한에서 확산되고 있는 한류(韓流)를 이용한 소프트 파워를 내세우는 게 더 주효할 것”이라면서 “이들이 시장을 통해 성장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 한국제품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해서 우리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킬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방안도 적극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도 “장마당 세대가 시장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깨닫고 한국 문화에 열광했다는 점에서 우리와 함께 한다는 ‘마음 인프라’ 구축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당국이 아닌) 장마당 세대들과 직접 교류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그들의 마음을 산다면 통일도 앞당겨 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