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 장군님, ‘뇌물 장군님’

탈북자들이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새롭고 신기하지만 정치적인 영역에서 가장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다당제(多黨制)’이다. 의문점도 없지 않다. 야당, 여당의 난립으로 정치가 불안정하여 능률적이고 일관적인 국가정책을 수행하기 어렵지 않을까? 과연 행정부의 업무가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까?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균형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니 ‘이 무슨 물고 뜯는 조화의 관계인가’ 하고 의아해 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서 뇌물혐의로 구속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너무도 혼잡스럽다. 또 전직 대통령까지 뇌물 수수혐의로 처벌받는 현실을 목격하며 “민주주의 사회는 과연 이런 것이구나!”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뇌물이란 직권(職權)을 이용하여 특별한 편의를 보아 달라는 뜻으로 주는 부정한 금품이다.

뭐든지 바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

북한주민들이 김정일에게 바쳐야만 하는 충성심이라는 것도 뇌물과 흡사하다. 김정일에게 목숨을 바치든, 금품을 바치든, 바쳐야만 특별한 편의가 보장되고 생존에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한의 주민들이 위대한 영도자로부터 일개 개별적인 간부들에게 이르기까지 충성심이라는 표현으로 바쳐지는 뇌물행위를 체험했더라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북한의 정치, 그 자체는 뇌물정치판이라고 말이다.

그 속에서 북한의 2월은 마치 뇌물정치의 완결판을 방불케 한다. 김정일의 생일 2월 16일은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과 더불어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로 맞이하자”고 주민들을 들볶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민들은 정신을 바치든, 금품을 바치든 무엇인가 정성을 다해 바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에서 생존할 자격이 없다.

2월 16일을 맞이하며 북한주민들은 김정일에게 바쳐야 하는 충성의 선물마련 운동을 한다. 노동당에서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의 탄생 00돐을 높은 정치적 열의와 빛나는 노력적 성과로 맞이하자!”라는 구호를 내 걸고 주민들을 볶아댄다.

큰 도둑이 받는 합법적인 뇌물

구호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높은 정치적 열의란 주민들의 의식을 김정일에게 바치라는 정신적인 뇌물이고 노력적 성과란 물질적으로 그 무엇인가 만들어 바치라는 물질적 뇌물의 표현 격이 된다. 2월에는 전체 주민들에게 종전과 비유 할 수 없으리 만큼 우상화 교육을 강화하여 온 정신을 김정일을 위하여 바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력적 성과라는 물질적 뇌물의 가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주민들은 충성의 선물 마련운동에 나서는데 여기에는 모든 귀물들이 “김정일 장군님께 드리는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중앙당으로 보내진다. 여기에는 산삼을 비롯한 장수의약품은 물론 산 짐승, 곡류 건강에 좋고 쓰기에 편리한 것이라면 모든 것이 다 속한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는 1990년 초 함경북도 새별군에서 3년을 보냈다. 당시 새별군 주민들이 2월 16일을 맞아 김정일에게 바치는 선물은 주로 기장쌀과 멧돼지를 비롯한 산짐승들 이였다. 기장쌀은 새별군 룡계리의 노인들이 옥토를 골라가며 농사지은 것을 정성껏 포장하여 바쳤고 산짐승은 도 안전국 성원들의 지휘 하에 주민들이 산 속을 누비며 산채로 잡아다 바치는 것이 원칙이었다. 물론 그 품질 좋은 기장쌀을 생산한 노인들은 그 쌀을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죽으면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죽여서 잡기도 어려운 산짐승을 산채로 잡느라고 많은 주민들이 다쳐가며 생고생을 했다.

위와 같은 선물마련은 주민들의 자발성도 어느정도는 있지만 사실상 당조직의 강요에 의하여 집행된다. 그들이 선물(뇌물)을 바치면서 김정일에게 바라는 소원은 딱 한가지다. 개별적 주민들은 김정일에게 선물을 바쳤다는 명목으로 좀 편하게 살게 해달라는 것이고, 당간부라면 출세를 시켜달라는 요구다. 인간은 이해관계 속에 살아가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철칙이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의 관점에서 충성의 선물마련은 북한에서 특이하게 벌어지는 “합법적인 뇌물 마련”이라 본다. 합법적일 뿐 공공연하게 바라고 요구하는 것은 뇌물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작은 도둑이 받는 비합법적인 뇌물

원래 뇌물이라는 뜻은 부정의 행위이므로 비합법적이라는 단어가 불필요하지만 북한에서는 거의 반 합법적인 형태가 뇌물행위다. 북한주민들이 일상 쓰는 말은 “여기서(북한에서)는 코밑치례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이다. 작든, 크든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움직일 권한조차 없다는 말이다.

2월이면 더욱 그러하다. 당 조직을 통한 합법적인 뇌물행위가 성행하는 마당에 하급 간부들의 뇌물행위가 잦아들 수는 없다. 이치는 간단하다. 충성의 선물을 마련 할 위임을 받은 간부들은 주민들에게 강요하고 주민들은 그 강요에서 벗어나기 위해 간부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모면한다. 큰 도둑(김정일)이 작은 도둑(당 간부)을 낳는 격이다.

예를 들어 김정일 우상화교육을 위한 강연회에 불참했다면 비판이 두려워 술, 담배 또는 금품을 들고 간부에게 뇌물을 바친다. 간부들 역시 “받을 것도 받지 않는 사람은 바보 중에 바보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말한다. “당일군은 당당하게. 보위원은 보이지 않게, 안전원(보안원)은 안전하게 장군님은 장군답게”뇌물을 먹고 산다고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의 행동은 이해관계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 철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뇌물행위에 따른 법적통제는 무의미 할 수밖에 없다. 서로 똑같이 뇌물을 받아먹고 살기 때문에 서로 눈감아주는 것이 하나의 정서로 자기 잡게 됐다.

위와 같이 뇌물에 의하여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기 위하여 벌이는 여러 가지 활동을 “뇌물정치”라 표현 할 수밖에 없다.

이주일 논설위원(평남출신, 2000년 입국) lji@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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