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른바 ‘3대 명절(김일성·김정일 생일과 음력설)’ 때마다 전체 주민들에게 식량·생필품 등을 지급돼왔던 ‘명절 특별 공급’이 이제는 간부층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있다고 북한 내부소식통이 전해왔다.
양강도 소식통은 17일 ‘데일리엔케이’와 통화에서 “혜산에서는 16일 장군님(김정일) 생일을 맞아 일반 백성들에게 차려지는 명절 선물이 아무것도 없었다”며 “200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해왔다.
소식통은 “예전에는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명절 선물을 준비해서 전국에 내려 보냈지만 요즘에는 각 도, 시, 군당 별로 혹은 단위 기업소나 집단농장 별로 자체적으로 명절 선물을 준비해서 백성들에게 공급라는 방침이 전해지고 있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부들이 명절 선물에 대한 책임을 모두 아랫단위에 떠넘기고 결국 자기들 몫만 챙기다 보니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평안북도 향산군과 운산군에서는 보름치 식량이 특별공급 된 것으로 전해진 바 있어 양강도와 함경도 등 북부지방과는 특별공급에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양강도 소식통은 “형식적이나마 그동안 명절 공급은 계속 되어 왔다”며 “2005년 10월 10일 당창건 60주년과 지난해 9월 9일 건국 60주년에도 특별 공급이 있었는데, 장군님 생일에 명절 공급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체 힘으로 명절 공급 마련하라’…간부들만의 선물잔치
북한에서는 김일성 사망 직전까지 김일성-김정일 생일·음력설 마다 식량, 돼지고기, 술, 담배 등이 지급됐고, 탁아소와 학교에서는 교복, 학용품, 사탕, 과자 등의 ‘명절 선물’이 공급돼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중앙에서 내려 보내는 명절 공급은 아예 중단됐고, 1998년부터는 평양시 주민들에 한해서만 중앙의 명절 공급품이 이어졌다. 단 지금도 소학교 이하 아동들에 대해서는 사탕과 과자를 합쳐 약 1kg 정도의 당과류를 명절 선물로 주고 있다.
2000년부터 북한 당국은 명절 특별공급에 대한 중앙의 책임을 포기하고 해당 지역, 각급 기업소와 집단농장별로 자체 재원을 마련해 명절 선물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러한 지시로 인한 부작용은 바로 나타났다. 단위마다 ‘명절공급을 위한 외화벌이’라는 명목으로 콩, 고사리, 약초 등을 확보하기 위한 주민동원이 시작된 것이다. 인민반별로, 직장별로 과제가 주어졌고, 당 간부들에게는 이 사업이 중요한 ‘과업’으로 부상했다.
올해 ‘음력설 명절공급’과 관련해 북한 당국은 지난해 12월 20일 중앙당 조직지도부 지방지도과의 지시로 각 도, 시, 군, 당 위원회에게 ‘각급 당위원회가 책임지고 2009년 음력설 명절공급을 특색 있게 조직할 데 대하여’라는 지시문을 내려 보냈다.
소식통은 “직장 자체로 명절 공급을 하라고 하니 간부들은 이런 기회를 노골적으로 이용했다”면서 “지난 음력설 당시 명절 공급품을 받았던 집들을 보면 신통히도 당, 보위부, 보안서, 무역국 등 간부들 집들이었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번 16일에도 도당 간부들은 따로 입쌀과 돼지고기, 술, 담배, 콩기름을 명절 선물로 받았다”며 “도당 차원에서 준 것 말고도 부서별로 또 나눠주는 것이 있었는데 도당 조직부 간부들은 중국제 양말과 종합화장품을 나누어 가졌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또 “양강도 풍서군에서는 1월 초에 300㎡ 규모의 통나무를 중국에 수출했다는 말도 있고, 도당 부장들, 보위부·보안서 간부들 집들에는 각 지방에서 잡아다 바친 노루, 멧돼지들이 몰렸다”고 덧붙였다.
그는 “명절 때만 되면 힘 없는 백성들만 죽어난다”며 “간부들의 명절 선물을 보장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외화벌이 원천 확보에 동원돼야 하고,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윗사람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력층과 특수지역에 ‘김정일 선물’ 몰려
주민들에 대한 명절 선물공급에 대한 책임이 각 지역, 단위별로 떠넘겨지면서 지역마다 명절선물의 종류와 양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17일 ‘데일리엔케이’와 통화에서 “2월 16일을 맞으며 평양시와 함경북도 회령시, 양강도 삼지연군, 개성특구에 대해 국가에서 원료 자재들을 대주어 명절상품들을 공급했다”며 “회령시는 이번 명절에 시내 거주 주민들에 한해 세대당 콩기름 1병, 사탕과 과자 각각 500g, 세수비누, 칫솔, 치약을 공급했다”고 밝혔다.
소식통은 또 “황해남도 일부와 평안북도 일부 지방들에서는 2월 16일을 맞아 2~3일 분의 식량이 공급됐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중앙 특별공급이 진행된 지역들은 모두 북한 당국에 의해 선별된 지역이다.
함경북도 회령시는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의 고향이며, 양강도 삼지연군은 김정일 스스로가 자신의 출생지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개성특구는 대외선전용 효과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소식통은 “2006년 회령시 비사회주의 그루빠 총화 당시 인민반장들이 ‘어머님(김정숙)의 고향에서 살기가 힘들어 모두 중국으로 도주한다’고 탄원했다”며 “그것이 장군님께 보고 된 후부터 명절 같은 때는 중앙에서 특별 공급품을 직접 내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식통은 “우리같이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정구역상 회령시에 속한다 해도 공급대상에서 제외 됐다”고 전했다.
한편, 간부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김정일의 선물공세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소식통은 “이번 장군님의 생일을 맞으며 시, 군당 책임비서들과 중앙당 비서처 비준대상 간부들에게 장군님의 선물들이 전달됐다”면서 “국가 공로자들과 모범노동자들도 선물을 받았는데 회령시에서만 7명의 노동자와 농장원들이 특별 선물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옛날엔 명절이면 술 한 병이라도 골고루 나누어주는 게 있어서 기분이라도 좋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서 “지금은 간부들만 ‘지금이 딱 좋은 세월’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일반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2월 16일이 역대 명절 중에 제일 섭섭했던 명절이었다”며 “한쪽에서는 여맹, 청년동맹 노래모임들이 조직됐지만 정작 구경하겠다고 모인 사람도 없었고, 명절 당일에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고 침울했던 주민들의 표정을 전했다.
이와 관련, 중국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는 NGO 활동가 최 모씨는 “이 같은 추세가 북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북한에서 최고로 숭배하는 김정일의 생일과 관련한 사업에서조차 ‘중앙집권’이나 ‘중앙통제’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