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의 家門’…주목되는 김정일 친인척들

올해 66세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굳어지면서 북한 체제를 이끌어 온 `김일성-김정일 가문’의 친인척들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위원장의 세 아들인 정남(37), 정철(27), 정운(24)중 한명이 후계자로 지명될 경우 친인척들이 힘을 보태 세습체제를 강화하거나 암투를 벌일 가능성이 있고,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서더라도 이들이 중요한 변수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62) 당 경공업부장과 그의 남편인 장성택(62) 노동당 행정부장, 김 위원장의 네번째 부인인 김옥(44)씨.

막내아들인 정운을 미는 것으로 알려진 김옥씨는 김 위원장의 3번째 부인인 고영희씨의 사망 전에는 김 위원장의 서기실 과장 직함을 갖고 김 위원장의 각종 국정을 도왔고, 고씨 사망 이후에는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로서 국정을 보좌하면서 권력의 중심에 서있다.

그는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김 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김 위원장의 특별지시를 받아 국방위 과장 자격으로 동행했고, 2006년 1월 김 위원장의 방중에도 동행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중국 고위층과 인사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맏아들인 정남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 부장은 2004년 ‘분파행위’를 이유로 권력에서 멀어지는가 싶었으나 2년여만에 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당 행정부장에 임명되면서 명실공히 2인자 자리를 차지했다.

김경희 부장은 권력기관의 실세라거나 당 부장이라는 직함보다는 김 위원장의 유일한 동복 형제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시절 김일성 주석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김경희-장성택 부부는 한때 별거할 정도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원래의 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김 부장은 2004년 남편인 장 부장이 업무정지 처벌을 받자 불만을 드러내곤 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 모두 고영희씨의 아들들인 정운, 정철보다는 성혜림의 아들 정남을 더 챙겼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정일 위원장의 딸로는 두번째 부인 김영숙씨가 낳은 장녀 설송(35)과 차녀 춘송(33), 고영희씨가 낳은 여정(21) 3명인데 모두 공식 직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설송이 김 위원장의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일들을 다룬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권수립 60주년 열병식을 한 노농적위대 등을 관장하는 민방위사령관인 장성우 군 차수는 장성택 부장의 형이며, 인민무력부 정찰국장,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 정치국장, 제3군단장 등을 역임한 군부 원로이다.

그는 2003년 9월께 노농적위대와 붉은청년적위대, 교도대 등 비정규군을 총괄하던 당 민방위부가 폐지되고 인민무력부 내에 신설된 민방위사령관을 맡고 있다.

장성택의 동생인 장성길도 인민무력부 혁명사적관장을 맡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2006년 7월 사망했다.

장성택 부장의 형이 군부 요직에 있는 점은 민간인인 장 부장이 실세로서 입지를 넓히고 향후 후계문제 등에서 군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도 플러스로 작용할 수 있다.

9.9절 행사는 물론 당.정.군 행사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리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고 김일성 주석의 외사촌매부다.

1970년대에 이미 군 총정치국장을 지낸 그는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인민무력부장과 갈등으로 지방에 좌천되기도 했으나 결국 복귀했고, 김정일 위원장의 신임으로 1998년 9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사촌동생인 김신숙(1986년 사망)의 남편이다. 한때 정치국 위원과 당비서 등을 지냈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아 `측근’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는 전 부인 사망 후 재혼했다.

김정일 위원장과 불편한 관계의 친인척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유일한 숙부인 김영주(88)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의 후계자 선정에 걸림돌 역할을 했던 `정적’중 한 사람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장기간 자강도에서 ‘유배살이’를 했다.

권력장악을 확실히 한 김 위원장은 1993년 12월 숙부에게 부주석 자리를 주고 현재는 명예직으로 대우를 하고 있지만 앙금은 여전히 남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과 후계 싸움에서 밀려난 이복동생 김평일 대사는 1988년 헝가리와 불가리아 대사, 1994년 핀란드 대사를 맡았고 1998년 1월 폴란드 대사로 임명된 이후 해외생활을 하며 아직 북한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이복동생이자 김평일 대사의 친동생인 김영일은 독일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참사관을 지내다가 2000년 젊은 나이에 사망했고, 김광진 오스트리아 대사의 부인인 김경진은 김 위원장의 이복누나이자 김평일 대사의 친누나다.

또 196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아들인 김평일 대사를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과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였던 김성애는 김 주석 사망 3년 후인 1998년 4월 여맹 위원장에서 해임된 이후 현재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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