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당국이 중국에 친척이 있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쌀 구입을 목적으로 방중(訪中)할 의향이 있으면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주겠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 차원의 식량외교가 신통치 않자 민간을 동원해 식량 공급량을 늘리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다.
25일 양강도 소식통은 “최근 담당 보위지도원들이 중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을 요해(파악)하면서 친척방문 갈 의향이 있으면 동의서를 써 주겠다고 했다”며 “보위원들은 ‘가게 되는 경우 쌀만 가져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보위지도원들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인민들의 생활을 보다 풍족하게 해주시려고 머나먼 외국을 방문하시는데 인민들이 도와야 되질 않는가’라면서 중국에 친척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설득을 하고 있다”며 “마지막에는 (김정일 방중에 대해) 비밀을 지키라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5월 중순경부터 현재까지 중국 사사(私事) 여행자들의 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김정일의 방중 관련 소식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때문에 이 같은 조치는 김정일의 귀국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소식통은 “몇 년을 신청해도 부결됐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노력 없이 친척방문이 성사될 것 같다. 국가에서는 공업품, 식품을 제외하고 모두 쌀로 가지고 오라고 요구한다”며 “대신 중국세관에서 쌀만은 관세를 받지 않게 조치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조치에 주민들은 다소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북한 내에서는 쌀장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식통은 “아무리 중국에서 관세를 받지 않더라도 쌀만 가지고 오면 장사가 되지 않는데 가야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 친척 방문으로 나왔다가 쌀을 가지고 오는 경우 중국세관에 톤 당 200위안(元)의 세관비를 낸다. 북한쪽 세관에서는 1997년부터 쌀에 대한 세관비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 식량난에 따른 고육지책(苦肉之策)의 일환이었다.
이전에도 북한은 식량구입 목적의 친척방문은 허용해 왔다. 식량을 구입해 올 경우 관세를 낮춰주는 제도도 실행해왔다.
다만 여행증명서 발급 절차가 까다로웠다. 일단 친척방문 신청서를 제출하면 보위원들이 사전에 가족·친척관계를 면밀히 따지고 확인한다.
심사 과정에서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거나 사상검토가 안 돼 있는 사람들은 친척이 있어도 부결된다. 동사무소 장과 담당주재원, 담당보위원, 반탐처장, 보위부장 등 5명의 수표(사인)가 있어야 ‘여행증명서’가 발급돼 출국할 수 있다. 출국허가를 받은 사람들은 일주일간 강습을 받게 된다.
때문에 복잡한 수속절차도 없고, 주민들이 직접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담당보위원들이 찾아다니며 중국 친척방문을 허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양강도 혜산시에는 중국 친척방문 허가를 받은 주민들이 30명 정도 출국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한편, 최근 북한은 식량난에 따라 법질서도 무력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양강도 소식통은 “밀수도 식량만 가져오면 법적처벌이 없다. 오히려 식량을 넘겨 올수 있다고 하면 국경경비대에서 보호 해준다”며 “밀수로 식량을 구해오거나 나라에 바치면 법을 어기고도 ‘애국자’라고 평가받을 정도”라고 말했다.